뒷짐- 이정록 뒷짐 이정록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소나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게 가슴뿐인 줄 일았지 등 뒤에서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2
휴식- 이영광 휴식 이영광 봄 햇살이, 목련나무 아래 늙고 병든 가구들을 꺼내놓는다 비매품으로 의자와 소파와 침대는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어긋나 삐거덕거린다 갇혀서 오래 매 맞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전쟁을 치러온 이 제대병들을 다시 고쳐 전장에, 다시 들여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의자에게도 의자가 소파..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11
친견- 이시영 친견 이시영 달라이 라마께서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중국의 한 감옥 에서 풀려난 티베트 승려를 친견햇을 때의 일이라고 한 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냐는 물음에 승려가 잔 잔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저들을 미 워할 뻔했습니다그려!" 그러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승려 의 두..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8.20
민간인- 김종삼 민간인 김종삼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7행의 시에서 슬픈 소설 한 편을 읽는다. 김종삼의 시는 짧지..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5.26
한 호흡 한 호흡 문태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5.16
나는 고것들을 고양이라 부르련다 나는 고것 들을 고양이라 부르련다 장옥관 오늘 새벽에 음력 정월 숫새벽에, 모처럼 엘리베이 터 타지 않고 걸어 내려왔는데 말이지요 햐, 기막힌 것 봤어요 아파트 이층 현관문에 붙은 찢어진 탁상 캘 린더 석 장,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습디다 쉿! 조용히하시오 우리집 고양이가 잠들어슴 명희 괴발개..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5.01
게 눈속의 연꽃 게 눈 속의 연꽃 -황지우 1 처음 본 모르는 풀꽃이여, 이름을 받고 싶겠구나 내 마음 어디에 자리하고 싶은가 이름 부르며 마음과 교미하는 기간, 나는 또 하품을 한다 모르는 풀꽃이여, 내 마음은 너무 빨리 식은 돌이 된다, 그대 이름에 내가 걸려 자빠지고 흔들리는 풀꽃은 냉동된 돌 속에서도 흔들린..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4.25
사랑은 사랑은 이인원 눈독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하마, 손을 타면 단숨에 굴러떨어지고 마는, 토란잎 위 물방울 하나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이라고 한다면.... 어쩐지 좀 서글퍼집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럴싸하기도 하고요. 무슨 일이던 처음이 그랬던 것도 같고요... 살다보니 처음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4.22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4.18
실종 실종 이장욱 나는 조금씩 너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내 바깥에서 태어났다 나는 아무 것도 회상하지 않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의 기억이 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내 발이 지상을 떠나가는 풍경을 행인들은 관람하였다 내 눈썹과 입술과 또 어깨가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