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의 위력- 김진완 잇몸의 위력 - 聖 밥상 김진완 오래 전, 교회와 조산소 사이에 세탁소가 있었네 세탁소에 딸린 한 칸 방 안에 허덕이고 비틀대던 생계를 간신히 떠받들던 밥상이 있었네 오래 전, 미혼모가 아이를 낳던 일요일 교회와 조산소 사이에 세탁소가 있었고 구원에서 가난 쪽으로 한사코 쓰러지려던 밥상이 있..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19
식당의자- 문인수 식당의자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 지 않으니, 앙상한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짓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19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손택수 구두 뒷축이 들렸다 닳을대로 닳아서 뒷축과 땅사이에 새끼 손가락 한마디만한 공간이 생겼다 깨질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올리고 있었나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뒷꿈치 뿔끈 들어올려주고 있었..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18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진 운이 좋앗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 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정말 그럴까? 강해서 살아남..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09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브레히트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베를톨트 브레히트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있었다 장미가 그곳에 피..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04
메시지- 자크 프레베르 메시지 자크 프레베르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의자 누군가 연 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건너지르는 숲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물 누군가 죽은 병원 - 스냅사진 같은 단순한 이미지의 나..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7
간격- 안도현 간격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4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희덕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희덕 아침마다 서둘러 출근을 하지만 그림자는 집에 있다 그를 두고 나오는 날이 계속되고 거리에서 나는 활짝 웃는다 그림자 없이도 웃는 법을 익힌 뒤로는 내 등 뒤에 그림자가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집에서 혼자 밥 말아 먹고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4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가는 이삿집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3
비스듬히- 정현종 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을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 누구나 기대고 삽니다. 아니 살아야..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