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shiwoo jang 2007. 4. 18. 22:28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셧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탁도 영진설비에 갔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냥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시인은  지금쯤 영진 설비에 돈을 갖다 줬을까요?

  쑥국새 울음 소리가, 문밖의 자스민 나무 한그루가...

시인을 발목을 잡지 않았더라도 시인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무진 많았을 겁니다. 지금도 영진설비에 돈을 갖다 주지 못했을 거고

결국 아내의 몫이 되었겠지요.

구름족인 시인과 사는 아내는 그런 시인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 봐주겠지요.

해피엔딩으로 맺고 싶은 솔직한 심정...

사소한 일상이 한편의 시가 되고,

그 시를 빚는 빼어난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언어술사 맞지요 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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