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뒷짐- 이정록

shiwoo jang 2007. 9. 22. 21:19

뒷짐

 

               이정록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소나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게 가슴뿐인 줄 일았지

등 뒤에서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꽃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뭉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산에 오를 때 뒷짐을 지고 오르면 휠씬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고

한 시인이 일러줬습니다. 그래 그렇게 올랐더니

마음이 그래 그랬던지 휠씬 편안하게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가벼운 산행길에선 곧잘 뒷짐을 지곤하지요.

그런데 뒷짐이라는 말 참 재미있지 않나요?

손 둘을 가지런히 겹치고 맞잡아 쥐는 일이 뒷짐이라니요...

가끔 우리말 재미있고 곱다 생각할 때가 많은데요.

뒷짐이란 말도 그래요...

그런데 허공 한채를 업고 다닌다니요.

그래서 천상 시인인가봅니다 이 분....

뒷짐지는 사소한 일에서도 이런 시를 발견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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