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 최승호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게는 참 조용하다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멍게는 얼마나 배려가 깊은 존재인가 바다에서 온 지우개 같은 멍게 멍게는 나를 멍청..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8.28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늗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8.25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물기 남은 바닷가에 긴 다리로 서 있는 물새 그림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서 멍하니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운 빛나는 저녁 바다를 - 저물무렵이면 더욱 빛나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라 뜨겁고도 치열하게 살다간 채 익지못한 채 떠난 한 사람의 부음이 가슴시리..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8.24
밤엔 천 개의 눈이 있다 밤엔 천 개의 눈이 있다 프랜시스 .w. 부르디움 밤엔 천 개의 눈이 있고 낮엔 오직 하나. 하지만 밝은 세상의 빛은 해가 지면 사라져버린다. 정신엔 천 개의 눈이 있고 마음엔 오직 하나. 하지만 삶의 빛줄기는 사랑이 끝나면 꺼져버린다. 천 개의 눈으로도 못 당하는 단 하나, 그것 무엇일까? 단 하나인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7.11
지하철 정거장에서-에즈라 파운드 지하철 정거장에서 - 에즈라 파운드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IN A STATION OF THE METRO - Ezra Pound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뭐 더 보탤 말이 없는, 말을 더하는 것은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되는, 단촐하고, 선명한 이미지들,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17
전주곡들- 엘리엇 1 겨울 저녁이 통로마다에 비프 스테이크 냄새와 함께 가라앉는다 여섯시, 연기 피운 하루들의 타버린 동강이들 그리고 지금 돌풍 소나기가 너의 발치의 시든 잎새 들과 공터 신문지의 검댕이 낀 조각들을 싼다 소나기는 쪼개진 차양과 굴뚝과 토관을 때린다 그리고 거리 구석에선 외로운 마차 말이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6
단감- 장석주 단감 장석주 단감 마른 꼭지는 단감의 배꼽이다 단감 꼭지 떨어진 자리는 수 만 봄이 머물고 왈칵, 우주가 쏟아져 들어온 흔적, 배꼽은 돌아갈 길을 잠근다. 퇴로가 없다. 이 길은 금계랍 덧칠한 어매의 젖보다 쓰고 멀고 험하다 상처가 본디 꽃이 진 자리 인것을, - 상처가 꽃진 자리...... 그래서 꽃이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6
일요일-프레베르 고블랭가(街) 겹겹이 늘어선 가로수 사이 대리석상 하나가 내 길을 가리킨다 오늘은 일요일 극장은 만원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인산들을 바라본다 석상은 내게 입맞춤하지만 아무도 안본다 우리에겐 손가락질하는 눈먼 아이뿐, - 프레베르, 일요일 전문(김화영譯) -현충일 휴일입니다. 일요일 같은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6
뒤늦은 대꾸-신기섭 뒤늦은 대꾸 신기섭 빈 방, 탄불 꺼진 오스스 추운방. 나는 여태 안산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며칠 전 당신이 눈을 감은 아랫목에 질 나쁜 산소호흡기처럼 엎드려 있어요 내내 함께 있어준 후배는 아침에 서울로 갔어요 당신이 없으니 이제 천장에 닿을 듯한 그 따뜻한 밥구경도 다 했다. 아쉬워하며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4
프레베르 -자유지역 군모를 새장에 벗어 놓고 새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외출했더니 그래 이젠 경례도 안 하긴가? 하고 지휘관이 물었다 아뇨 경례는 이제 안 합니다 새가 대답했다 아 그래도? 미안합니다 경례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하고 지휘관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잘못 행각할 수도 잇는 법이지요 새가 말했다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