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자크 프레베르 메시지 자크 프레베르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의자 누군가 연 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건너지르는 숲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물 누군가 죽은 병원 - 스냅사진 같은 단순한 이미지의 나..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7
간격- 안도현 간격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4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희덕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희덕 아침마다 서둘러 출근을 하지만 그림자는 집에 있다 그를 두고 나오는 날이 계속되고 거리에서 나는 활짝 웃는다 그림자 없이도 웃는 법을 익힌 뒤로는 내 등 뒤에 그림자가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집에서 혼자 밥 말아 먹고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4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가는 이삿집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3
비스듬히- 정현종 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을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 누구나 기대고 삽니다. 아니 살아야..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2
뒷짐- 이정록 뒷짐 이정록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소나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게 가슴뿐인 줄 일았지 등 뒤에서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22
휴식- 이영광 휴식 이영광 봄 햇살이, 목련나무 아래 늙고 병든 가구들을 꺼내놓는다 비매품으로 의자와 소파와 침대는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어긋나 삐거덕거린다 갇혀서 오래 매 맞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전쟁을 치러온 이 제대병들을 다시 고쳐 전장에, 다시 들여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의자에게도 의자가 소파..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9.11
친견- 이시영 친견 이시영 달라이 라마께서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중국의 한 감옥 에서 풀려난 티베트 승려를 친견햇을 때의 일이라고 한 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냐는 물음에 승려가 잔 잔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저들을 미 워할 뻔했습니다그려!" 그러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승려 의 두..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8.20
민간인- 김종삼 민간인 김종삼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7행의 시에서 슬픈 소설 한 편을 읽는다. 김종삼의 시는 짧지..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5.26
한 호흡 한 호흡 문태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 poem/時雨의 시읽기 2007.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