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곡들- 엘리엇 1 겨울 저녁이 통로마다에 비프 스테이크 냄새와 함께 가라앉는다 여섯시, 연기 피운 하루들의 타버린 동강이들 그리고 지금 돌풍 소나기가 너의 발치의 시든 잎새 들과 공터 신문지의 검댕이 낀 조각들을 싼다 소나기는 쪼개진 차양과 굴뚝과 토관을 때린다 그리고 거리 구석에선 외로운 마차 말이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6
단감- 장석주 단감 장석주 단감 마른 꼭지는 단감의 배꼽이다 단감 꼭지 떨어진 자리는 수 만 봄이 머물고 왈칵, 우주가 쏟아져 들어온 흔적, 배꼽은 돌아갈 길을 잠근다. 퇴로가 없다. 이 길은 금계랍 덧칠한 어매의 젖보다 쓰고 멀고 험하다 상처가 본디 꽃이 진 자리 인것을, - 상처가 꽃진 자리...... 그래서 꽃이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6
일요일-프레베르 고블랭가(街) 겹겹이 늘어선 가로수 사이 대리석상 하나가 내 길을 가리킨다 오늘은 일요일 극장은 만원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인산들을 바라본다 석상은 내게 입맞춤하지만 아무도 안본다 우리에겐 손가락질하는 눈먼 아이뿐, - 프레베르, 일요일 전문(김화영譯) -현충일 휴일입니다. 일요일 같은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6
뒤늦은 대꾸-신기섭 뒤늦은 대꾸 신기섭 빈 방, 탄불 꺼진 오스스 추운방. 나는 여태 안산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며칠 전 당신이 눈을 감은 아랫목에 질 나쁜 산소호흡기처럼 엎드려 있어요 내내 함께 있어준 후배는 아침에 서울로 갔어요 당신이 없으니 이제 천장에 닿을 듯한 그 따뜻한 밥구경도 다 했다. 아쉬워하며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4
프레베르 -자유지역 군모를 새장에 벗어 놓고 새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외출했더니 그래 이젠 경례도 안 하긴가? 하고 지휘관이 물었다 아뇨 경례는 이제 안 합니다 새가 대답했다 아 그래도? 미안합니다 경례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하고 지휘관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잘못 행각할 수도 잇는 법이지요 새가 말했다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6.03
꼭지- 문인수 꼭지 문인수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를 접어 감추며 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 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4.10
마음의 짐승- 이재무 마음의 짐승 이재무 몸의 굴 속 웅크린 짐승 눈뜨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수성, 몸 밖의, 죄어오는 무형의 오랏줄에 답답한 듯 벌버둥치네 그때마다 가까스로 뿌리내린 가계의 나무 휘청거리네 오랜 굶주림 휑한 두 눈의 형형한 살기에 그대가 다치네 두툼한 봉급으로 쓰다듬어도 식솔의 안전으로 얼..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26
마음의 오지- 이문재 마음의 오지 이문재 탱탱한 종소리 따라나가던 여린 종소리 되돌아와 종 아래 항아리로 들어간다 저 옅은 고임이 있어 다음날 종소리 눈뜨리라 종 밑에 묻힌 저 독이 큰 종 종소리 그래서 그윽할 터 그림자 길어져 지구 너머로 떨어지다가 일순 어둠이 된다 초승달 아래 나 호낮 남아 내 안을 들여다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26
절하고 싶었다-황동규 절하고 싶었다 황동규 십오 년 전인가 꿈이 채 어슬어슬해지기 전 바다에서 업혀온 돌 속에 숨어 산 두사람의 긴 긴 껴안음 얼마 전 거실에서 컴퓨터 책상으로 옮길 때 비로소 들킨 마주 댄 살들이 서로 엉겨 붙은 껴안음보다 더 화끈한 껴안음. 그만 절하고 싶었다 색연필 찾아들고 그 모습 뜨려다 그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20
기차는 간다- 허수경 기차는 간다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오 나 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꽃진 자리 상처가 아물지 못한 자리, 상처를 가벼이 흘려버리..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