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희덕

shiwoo jang 2007. 9. 24. 15:58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희덕

 

 

아침마다 서둘러 출근을 하지만

그림자는 집에 있다

그를 두고 나오는 날이 계속되고

거리에서 나는 활짝 웃는다

 

그림자 없이도

웃는 법을 익힌 뒤로는

내 등 뒤에 그림자가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집에서 혼자 밥 말아 먹고 있을 그림자

 

그림자 없이도

밥 먹는 법을 익힌 뒤로는

내가 홑젓가락을 들고 있다는 걸

마주 앉은 사람도 알지 못한다

 

어느 저녁에 집에 돌아와보니

안방에도 서재에도 베란다에도 화장실에도 없다

 

겨울날에 외투도 입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

신발도 없이 어디로 갔을까

 

어둠 숙에 우두커니 앉아

그림자를 기다린다

그가 나를 오래 기다렸던 것처럼

 

 

 

 

-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아 쓸쓸해지는 시입니다.

알맹이는 두고 껍질만 바깥으로 내보내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정작 나는 없어지고... 문득 나를 찾았을 때의 그 쓸쓸함...

가끔 나와 대면하고 싶어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만

나는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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