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송재학 누에 송재학 아마 내 전생은 축생이었으리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린다면 하루아침에 나는 누에로 되돌아가버릴지 모른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강변의 야산이 친애하는 벌레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러고 보니 잠들면 나는 늘상 몸을 뒤척이며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게다가 고기를 멀리하고 나무 그늘의 통..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1.27
손목- 윤제림 손목 윤제림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에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1.19
나 한때 - 김지하 나 한때 김 지 하 나 한때 잎새였다 지금도 가끔은 잎새 해 스치는 세포마다 말들 태어나 온 우주가 노래 노래부르고 잎새는 새들 속에 또 물방울 속에 가없는 시간의 무늬 그리며 나 태어난다고 끊임없이 노래부르고 노래부른다. 지금도 신실하고 웅숭스런 무궁한 나의 삶 내 귓속에 내 핏줄 속에 울리..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1.05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1.01
조롱박- 울음 유종인 조롱박 - 울음 유종인 새끼 조롱박에 귀를 댄다 푸루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갈수록,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먹울먹하게 들렸다 그 소리 때문에 조롱박은 제 몸을 자꾸 밖으로 넓혀갔다 안에서 나는 소리를 밖에서 듣지 못하도록 조롱박은 허리를 졸라가며 몸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 새끼 조롱박 어..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25
잇몸의 위력- 김진완 잇몸의 위력 - 聖 밥상 김진완 오래 전, 교회와 조산소 사이에 세탁소가 있었네 세탁소에 딸린 한 칸 방 안에 허덕이고 비틀대던 생계를 간신히 떠받들던 밥상이 있었네 오래 전, 미혼모가 아이를 낳던 일요일 교회와 조산소 사이에 세탁소가 있었고 구원에서 가난 쪽으로 한사코 쓰러지려던 밥상이 있..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19
식당의자- 문인수 식당의자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 지 않으니, 앙상한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짓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19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손택수 구두 뒷축이 들렸다 닳을대로 닳아서 뒷축과 땅사이에 새끼 손가락 한마디만한 공간이 생겼다 깨질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올리고 있었나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뒷꿈치 뿔끈 들어올려주고 있었..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18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진 운이 좋앗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 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정말 그럴까? 강해서 살아남..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09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브레히트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베를톨트 브레히트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있었다 장미가 그곳에 피.. poem/時雨의 시읽기 2007.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