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문태준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 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 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01
너와집 한채- 김명인 너와집 한 채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짐이나 얻어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01
시인학교- 김종삼 시인학교 김종삼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01
강-황인숙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01
상사몽-황진이 相思夢 상사몽 黃眞伊 황진이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농訪歡時歡訪농 농방환시환방농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그대 그리는 심정은 간절하나 꿈에서 밖에 볼 수 없어 내가 님을 찾아 떠났을 때에 님은 나를 찾아왔네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01
사평역에서- 곽재구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01
겨울편지- 박세현 겨울편지 박세현 첫눈을 맞으며 세상의 나이를 잊으며 저벅저벅 당신에게 걸어가 기다림의 사립문을 밀고 싶습니다 겨울밤 늦은 식사를 들고 있을 당신에게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고 싶습니다 우리들 해묵은 안부 사이에 때처럼 곱게 낀 감정의 성에를 당신의 잔기침 곁에 앉아 녹이고 싶습니다 .. poem/時雨의 시읽기 2006.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