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상 - 이사라 한 세상 세상 어디에도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새가 떼를 이루어 칼날처럼 지나간다 하늘이 한순간 베인다 잠시 후 베인 흔적이 서로를 껴안고 아무는 동안 땅에서는 기차가 다리 위를 지나 간다 선로를 따라 침목의 침묵도 지나 강물 속으로 무거운 굉음을 내려놓는다 굉음이 어느덧 세.. poem/時雨의 시읽기 2017.09.02
어느 겨울 저녁 게오르크 트라클 어느 겨울 저녁 게오르크 트라클 창 유리에 눈송이 뚝뚝 떨어지고 저녁 종 길게 울리는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고 살림은 넉넉하다 떠도는 어떤 사람 문으로 다가 온다. 어두운 오솔길들을 지나서 황금빛으로 찬연히 꽃피고 있다. 은총의 나무 대지의 싸늘한 수액에..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9.01
가뜬한 참- 박성우 가뜬한 잠 박성우 곡식 까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그랗게 굽은 몸으로 멍석에 차를 잘도 비비던 할머니가 정지문을 열어놓고 누런 콩을 까부르고 있었다 카 끝을 추슬러 잡티를 날려보내놓고는, 가뜬한 잠을 마루에 뉘었다 하도 무섭게 조용한 잠이어서 생일 밥숟깔 놓고 눈을 감은 외할..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5.11
삼학년-박성우 삼학년 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 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를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 이런 삼학년 이제는 보기 힘들겠지... 너무 애어른이 많은 세상이라....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5.11
섬- 문태준 섬 문태준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두 손을 한가운데에 모으고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을 묵상하는 저 섬은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4.27
내가 나비라는 생각- 허연 내가 나비라는 생각 허연 그대가 젖어 있는 것 같은데 비를 맞앗을 것 같은데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노을 앞에서 온갖 구멍 다 틀어막고 사는 일이 얼마나 환장할 일인지 머리를 감겨주고 싶었는데 흰 운동화를 사주고 싶었는 데 내가 그대에게 도적이었는지 나비였는지 ..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4.27
살구꽃- 이상국 살구꽃 이상국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서문리 이장네 마당 짚가리에 기대어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 발 시려운 새들이 찾아와 앉았다 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 발 시려운 새들이 자리에 앉았다 간 자리에 꽃이 피었다니... 시인의 상상력이라니....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4.21
뿔을 적시며- 이상국 뿔을 적시며 이상국 비 오는 날 안경쟁이 아들과 함께 아내가 부쳐주는 장떡을 먹으며 집을 지킨다 아버지는 나를 멀리 보냈는데 갈 데 못 갈 데 더듬고 다니다가 비 오는 날 나무 이파리만한 세상에서 달팽이 처럼 뿔을 적신다 - 산다는 것은 달팽이가 잎파리 안에서 기어다니며 뿔을 적..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4.20
부추 꽃을 보다 - 유종인 부추 꽃을 보다 유종인 환멸을 가장할 필요는 없다 생은 또 다른 곳을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었지만 허공을 헤엄쳐오는 물고기는 아니었다 고요히 한낮이 흐르듯 타들어가는 오후에 나 홀로 집에 있다는 것이 작은 운명처럼 보였다 현관을 나서면 작은 마당이 온갖 잡초들과 나무들 기다..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4.20
이슬- 송찬호 이슬 송찬호 나는 한때 이술을 잡으러 다녔다 새벽이나 이른 아침 물병 하나 들고 풀잎에 매달려 있는 이술이란 벌레를 이슬이란 벌레를 잡기는 쉬웠다 지나간 밤 굼이 무거운지 어디 튀어 달아나지 못하고 곧장 땅으로 뛰어내리니까 그래도 포휙은 조심스러웠다 잘못 건드려 죽으면 이.. poem/時雨의 시읽기 201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