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shiwoo jang 2007. 10. 18. 08:37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손택수

 

 

구두 뒷축이 들렸다

닳을대로 닳아서

뒷축과 땅사이에

새끼 손가락 한마디만한

공간이 생겼다

깨질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올리고 있었나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뒷꿈치 뿔끈 들어올려주고 있었나보다

가끔씩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는 건

내 뒷축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얘기

허공을 딛으며 걷고 있다는 얘기

이제  내가 딛는 것의 반은 땅이고

반은 허공이다

그 사이에 내 낡은 구두가 있다

 

 

- 무심코 지나쳤던 뒷축

왜 한쪽으로만 닳을까?

한쪽으로 지우쳐 사는 삶이 문제였을까?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찬성 아니면 반대,

중립이 없는 세상에서 견뎌내기 위한 안간힘 같은거,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으려는 몸짓 같은거

그 사이에 허공이 들어와 산다

허공은 열린 공간

누구라도 주인이 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