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잇몸의 위력- 김진완

shiwoo jang 2007. 10. 19. 22:05
 

잇몸의 위력

   - 聖 밥상


                                 김진완



오래 전,

교회와 조산소 사이에 세탁소가 있었네

세탁소에 딸린 한 칸 방 안에

허덕이고 비틀대던 생계를 간신히 떠받들던

밥상이 있었네


오래 전,

미혼모가 아이를 낳던 일요일

교회와 조산소 사이에 세탁소가 있었고

구원에서 가난 쪽으로 한사코 쓰러지려던

밥상이 있었고

살려 달라 악쓰는 소리와 주 예수 십자가 보혈 사이에

겁에 질린 동생의 얼굴이 있었고 하얀 아래 웃니 사이에

밥알 묻은 숟가락이 있었네

오래 떨던......


오래 전,

찬송가와 비명이 식구들을 에워싸고

십자가에 매달린 사내의 피와 미혼모가 흘리는 선혈이

넘실거리며 밥상을 띄웠네

눈이 휘둥그레진 식구들은 허겁지겁

밥상 위로 올라가 숟가락으로 노를 저어

비명과 찬송의 강을 건넜네

건너,


건너서 이제는 당도했겠지 싶은 열세 번째 이사한 날

어휴 저 버리지 못하는 가난의 질긴 피내림!

이사한 집 냉장고와 벽 사이에 끼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

그 사나운 밥상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비린내가 목을 감아왔다

내 저 노무 걸 박살내서 불을 확 싸질러버려야지......

궁시렁대며 한참 망치를 찾다 돌아보니,

아기예수를 닮은 반곱슬이 조카 놈이 밥상 모서리를 잡

고는

고 바알간 잇몸으로 자근자근 깨물다 까륵까륵 웃으며

저 혼자 신이나 밥상을 두드리는 게 아닌가

일이 이쯤 되자,

나 마음 안에 사나운 밥상 그 사나운의 ‘사’ 네 다리를

딱딱 포개 접고

‘나운’의 모서리도 맑은 침 발라 녹이신

둥그런 조카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멀그렇게 웃어보는 것이다


“으이그 저 늠 저거 또 저런다 어에 지지-”

“깨끗이 닦은 거니 놔둬라 이가 나려고 잇몸이 가려워

그러니“


마음 네 귀퉁이 모서리가 닳으면 사나운 기억도 부드러

워지기도 하는 거라

옹알이를 하며 마음은 닻을 내리고

“세상이 온통 말랑말랑해 뵈냐? 영양갱 치고는 너무 큰

거 아니냐고 요 이쁜 놈아“

동생은 돌쟁이를 번쩍 안아 올리고 나는 조카 놈 손을 깨

물어-

상다리가 휘어지게 웃음 한 상 차리니 아-

맨입으로도 우릴 구원하사

복되고 갸륵하시도다 꺄르르 - 웃음천국에 우릴 당도케

하시니......

 

 

 아기의 힘이 대단한 것일까요?

밥상의 힘이 대단한 것이었을까요?

상다리가 휘어지게 한 상 차리는 아기의 웃음,

말랑말랑한 웃음과

사나운 을 녹이신 맑은 침을 위력!

아기가 점점 이뻐보이는 건 나이듦이라던데...

그래도 좋아요, 아기는  이쁘니까

 이 시인의 시집 기찬딸은 재미있게 읽혀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시간 없는 줄도 모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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