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182

빛에 닿은 어둠처럼_ 조은

빛에 닿은 어둠처럼 조은 나는 오래 경계에서 살았다 나는 가해자였고 피해자였고 살아간다고 믿었을 땐 죽어가고 있었고 죽었다고 느꼈을 땐 죽지도 못했다 사막이었고 신기루였고 대못에 닿는 방전된 전류였다 이명이 나를 숨 쉬게 했다 환청이 나를 살렸다 아직도 작두날 같은 경계에 있다 _시인의 잔잔한 음성으로 이 시를 듣는다 다감하고 따뜻하고 강단있는 사람, 그의 경계가 곧 나의 경계이니 우린 여전히 작두날 위에 서 있는지도...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 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 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 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창작실 작가들이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속옷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시가 떠올랐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 해본 적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희미하게 남아 있다- 안주철

희미하게 남아 있다 안주철 희미하게 남아 있다. 희박하게 남아 있다. 생활 속에 맺힌 물방울이 빛 한방울을 소중하게 간직하듯이 사랑이라는 말 속에 사랑이 맺히듯이 이별이라는 말 속에 이별이 스며들지 않듯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희박하게 나의 일부가 남아 있다. 내 속에는 가끔 내가 가득한 느낌이 들고 내 속에는 거의 나 이외의 것이 가득하지만 나와는 멀다. 멀리에 영영 있다. 사랑도 하기 전에 이별도 하기 전에 헤어진 사람과 같이 나는 희미하게 희박하게 숨을 쉰다.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내가 없다. 사진을 찍어도 내가 없다. 목에 힘을 주고 뒤를 돌아보아도 내가 없다. 사랑할 준비를 마친 후에도 이별하지 않았는데 이미 헤어진 사람과 같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희박하지만 명료한 내가 생활 속에 한방울 맺혀 ..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안현미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 이자 미용사였다 안현미 삐아졸라를 들으며 웹사이트에서 점쳐준 나의 전생을 패 러디한다 과거의 당신은 아마도 남자였으며/ 현재의 당신은 불행 히도 여자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난 곳과 시기 는 현재의 보르네오 섬이고 / 여자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