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학교
김종삼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校舍)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 김종삼,
시인학교 전문
지상에 이런 시인학교가 있다면 곁다리로 끼어서 조심스럽게 오늘의 강사진이 쏟아내는 강의에 귀 기울이고 싶다.
아니 굳이 강의가 아니어도 그들 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황홀할 것 같다. 김관식이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 지르면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저 말입니까 하고 되물어도 보고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한 모금 꿀꺽 삼켜도 보고 김종삼 시인이 들려주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을 재촉하면서 전봉래 김종삼의 술판에 참견하고 싶다. 교사가 레바논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데야 뭘 더 바랄 것이 있을까?
이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다. 이 시를 쓴 시인도 지금은 지상에 없으니 더 이를 말이 없지만 그는 지상에 없는 사람을 다
불러내어 시인학교를 만들었다. 모리스 라벨 볼레로가 유명한 음악가군 폴 세잔느 인물이든 정물이든 원통형으로 보고 그린 인상주의 화가의 거장이고
에즈라 파운드. 지하철인가 하는 시가 유명한 사람들인데 ... 그러나 그 사람들이 무엇을 했건 이 시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름이 주는 울림과 분위기를 차용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모두 결강이라니. 누구도 결강을 문제 삼지 않을 시인학교에서는 두꺼운 먼지까지
다정스럽다.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김소월과 김수영은 왜 휴학했다지? 두 사람은 함께 붙어 있음 서로 말 한마디도 안 할 사람들
같은데. 서로 그려내는 시 세계가 극명하게 달랐는데? 그건 두 사람의 문제고 우 구경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시를 읽어 가노라면 시인학교의
널널한 풍경이 그려진다. 시인이란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던가. 음악 좋아하고 그림 좋아하고 남의 시 읽고 감탄하고 술판에 기웃거리길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세상과 담 쌓고 문 꼭꼭 닫아걸고 나 시만 쓸거야 한다고 해서 좋은 시를 쓸 수 있던가? 시는 세상
한가운데저작거리에서 살아나는 인간애 진창에서 피는 연꽃 같은 것이 아니던가? 시인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있을 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인이 말하는
시인학교는 멀리 있지 않다. 책도 그림도 음악도 모두 스승이다,
이 시는 어려운 말이 전혀
없는데 읽기가 어렵다 . 의미를 찾으려고 할 때는. 그냥 편안하게 읽고 느낄 때는 무지 쉬운 시로 느껴진다. 세상에 쉬운시 어려운 시는 없다고
했던가 좋은 시 나쁜 시만 있을 뿐. 이 시는 간결한 시어가 주는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깊은 울림에 힘입어 좋은 시의 반열에 올린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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