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너와집 한채- 김명인

shiwoo jang 2006. 3. 1. 19:52

너와집 한 채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짐이나 얻어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을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울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거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의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정말 그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를 곳. 내가 들어간
후에 내가 들어온 길 마저 지워지고 흔적도 없이 내가 지워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굳이 나 어린 처녀가 아니어도, 외간남자가 없어도
나는 길없는 산길 외딴 집에서
문득 밝은 별 하나 머리에 얹고
수제비를 뜨거나 매운 연기 챙이며 고구마를 굽거나
함께 먹어줄 외간 남정네도 없이 지독하게 외로워지고 싶습니다.
알몸으로도 부끄럼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
무식하게 일자무식하게
무럭무럭 잘 살고 싶습니다.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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