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맨발- 문태준

shiwoo jang 2006. 3. 1. 19:53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
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
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
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 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
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시 2004, 현대문학



맨발의 울림



누군가 어떤 시가 좋은 시냐고 물었다. 어떤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시의 기준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좋은 시라면 무엇보다 깊은 울림이 있어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 울림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울림의 진폭을 넓혀 나아가 독자를 깊은 사색으로 걸어 들어가게 한다. 모호하고 잘 읽히지 않는 시는 살펴보면 그런 울림이 없다.
문태준의 맨발은 울림이 큰 시이다. 어물전 조갯살을 보면서 맨발을 끌어들인다. 부처의 맨발이 되었다가 시적 화자의 맨발이 되기도 하고 시를 읽는 독자의 맨발이 되기도 한다. 시의 행간에 독자의 공감이 자연스럽게 더해져서 큰 울림을 만들고 그 울림으로 독자를 경건하게 한다.
이 시는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순례하는 구도자의 보폭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함께 길 가는 겸손한 순례자로 만든다. 한낱 조개를 고행하는 구도자로 끌어올려 겸허하게 조문하는데 동참하게 만드는 시인의 솜씨가 빼어나다. 호흡 또한 거칠지 않고 낮은 어조로 가만히 읊조리며 독백하듯 읽게 한다. 시인의 독백을 따라가면 부처를 만나고 길은 만나고 아득한 시간을 만나고 탁발승 의 맨발 같은 삶을 만난다. 맨발이 그러하듯 가난도 양식도 움막도 울음을 만들어 내는 장치이다. 그 울음을 거두는 장치 또한 맨발이다.
이 시가 마음을 울리는 것에는 이러한 단어가 주는 애조가 한몫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시를 읽으면 감정적이 되기보다는 겸허해진다. 조개 앞에서 조차 경외심이 느껴져 머리를 조아리고 싶어진다. 이 시가 좋은 시로 읽히는 이유는 시가 주는 울림을 통해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시의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조개의 맨살을 만나고 맨발을 만나고 그 맨발을 따라 가다 보면 가슴 먹먹해지는 슬픔을 만나고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과 마주친다. 그러나 슬픔에 푹 빠져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슬픔은 수도자의 기꺼운 고행처럼 담담하게 읽혀진다.
이런 시를 두고 좋은 시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나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장난 글장난이다 싶은 시는 흔하지만 울림이 깊은 시는 흔치 않다 그래서 이런 시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이 시 한편이 주는 파장이 길어 문태준의 시집을 다시 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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