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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승과 먹줄 승_박남준

입숭과 먹줄 승 박남준 입승이라 불리며 시작과 끝을 다루는 이가 있다 절간의 결재 철에 선방의 기강을 세우는 책임자를 이르는 말이다 세을 입, 스님 승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먹줄 승이다 바르고 참된 것으로 마땅한 점을 찍고 먹줄을 퉁겨 파낼 것은 파내고 남길 것은 남긴다는 먹줄 승이라니 얼마나 곧고 둥근 직선의 말이냐 나 걸어온 길 위에서 맺은 별빛 같은 인연들에도 먹줄을 놓는다면 발자국 소리에 달려올 이름이 얼마나 되려나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 사람 시인선41, 2021 나도 먹줄 승이 되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휘어져있어서 힘들 것 같다. 다만 가끔식...먹줄을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하고....

카테고리 없음 2021.07.28

배후에 대하여_ 이상국

배후에 대하여 이상국 나는 나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거기까지가 나의 밖이다 나의 등에는 은유가 없다 손으로 악수를 꺼낸다든가 안면을 집어 넣거나 하는 그늘이다 은신처도 없지만 나의 등은 나의 오래된 배후다 제삿날 절하는 아버지처럼 구부정하고 쓸쓸한 나의 힘이다.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2021 그는, 아니 우린 참 쓸쓸한 배후를 가진 사람이군요.

혼자의 넓이_이문재

혼자의 넓이 이문재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로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혼자의 넓이, 창비, 2021 혼자의 넓이가 이렇게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