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사진관이 있는 동네

옴니버스 다큐 -나무이야기

shiwoo jang 2006. 3. 18. 23:08

kbs 스페샬  옴니버스 다큐 - 나무이야기1 을 보고

 

오늘 밤 독특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났습니다. 옴니버스형 다큐라는 형식부터 신선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봉화에 있는 청량사 근처의 한 그루 고목과  서울 도심의 가로수가 주인공이었지요.  고목과 가로수의 사계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형식이었습니다. 죽었으되 살아있는 나무와 살아있으되 죽은 나무의 대비가 극적이었습니다.


봉화의 청량사 근처 고목, 나무가 죽은 지는 그다지 오래지 않은 듯, 아직 물기가 남은 듯한  그러나 메마른 제 몸에 깃든 생명들을 말없이 품어주는 고목의 모습은 외경심까지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문득 날아와  딱다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마치 목탁소리인 듯 산중에 녹아들었습니다. 고목에 대한 딱다구리의 경배라고 해야할까요?


청량사의 운산스님이라던가요? 그 나무 지킴이 같은 스님의 예불과 딱다구리의 나무 쪼는 것이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난 가을 부터 삭힌 나뭇잎으로 만든 퇴비로 가꾼 텃밭, 그 텃밭에서 나는 소출을 그곳을 찾는 분들께 아낌없이 나누는 스님의 마음은 고목과 닮았고. 스님의 나무를 보는 따스한 시선과 나무의 당당함으로 하여 그 나무는 죽어도 살아있는 듯 존재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도심의 가로수는 어떤가요?  탁한 공기며 매연에 시달리고 뿌리조차 마음껏 뻗을 수 없는 환경도 그러했지만 과도한 가치치기와 방제에 시달릴 뿐 아니라 전선과 간판, 현수막의 끈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는 가로수의 운명을 생각하면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심겨졌으나 인간으로 하여 수난은 겪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여야하고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 대견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나무의 극명한 대조는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나무는 나무다워야 한다는 생각 나무로서의 품격을 지니고 나무답게 살았던 고목과 자신의 생태와는 무관하게 인간의 방식에 의해 잘리고 동여매고 꽁꽁 묶이는 고문을 감내하고 살아야하는 가로수가…….


티비를 끄고도 생각을 오래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강요하지 않는 메시지와 함께 두드러지지 않고 차분한 영상이 인상적이었고요.  카메라가 보여주는자연에 대한 애정어린 따스한 시선과 안쓰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량사의 사계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시적으로 보였고 생각이 스며들 여백이 많은 것도 좋았습니다. 차분하고 너무 정적인 느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지요. 두 분 나무전문가의 말씀도 좋았지만 운선스님인가요? 그분의 다듬어지지 않은 말씀이 더 와 닿던데요. 중간중간에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생각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나 행복한 저녁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2편이 방송된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