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모과불- 고영민

shiwoo jang 2016. 3. 8. 17:26

모과불



                             고영민


설풋한 모과 하나를 주워다가

책상에 올려놓았다

저 흉중에도 들고나는 것이 있어

색이 돋고 향기가 났다

둥근 테두리에 들어있는

한켠 공중

가끔 코를 대고

흠, 들이마시다보면

어릴 적 맡은 어머니 겨드랑이 냄새가 났다


모과의 얼굴 한쪽이 조금씩 썩기 시작했다

모과 속에 들어 있던 긴 시간

한여름의

그늘냄새, 매미소리


내 방 허공중에

매일 하루치의 제 것을 조금씩 꺼내 비워두던

모과 하나가

말끔히 한몸을 태워

검은 등신불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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