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불
고영민
설풋한 모과 하나를 주워다가
책상에 올려놓았다
저 흉중에도 들고나는 것이 있어
색이 돋고 향기가 났다
둥근 테두리에 들어있는
한켠 공중
가끔 코를 대고
흠, 들이마시다보면
어릴 적 맡은 어머니 겨드랑이 냄새가 났다
모과의 얼굴 한쪽이 조금씩 썩기 시작했다
모과 속에 들어 있던 긴 시간
한여름의
그늘냄새, 매미소리
내 방 허공중에
매일 하루치의 제 것을 조금씩 꺼내 비워두던
모과 하나가
말끔히 한몸을 태워
검은 등신불로 앉았다
'poem > 時雨의 시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론- 서정주 (0) | 2016.03.09 |
---|---|
우륵- 고영민 (0) | 2016.03.08 |
달팽이 약전- 서정춘 (0) | 2016.03.08 |
의문들- 심보선 (0) | 2016.03.04 |
주름살 사이의 젖은 그늘 - 이정록 (0) | 2016.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