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손택수
구두 뒷축이 들렸다
닳을대로 닳아서
뒷축과 땅사이에
새끼 손가락 한마디만한
공간이 생겼다
깨질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올리고 있었나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뒷꿈치 뿔끈 들어올려주고 있었나보다
가끔씩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는 건
내 뒷축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얘기
허공을 딛으며 걷고 있다는 얘기
이제 내가 딛는 것의 반은 땅이고
반은 허공이다
그 사이에 내 낡은 구두가 있다
- 무심코 지나쳤던 뒷축
왜 한쪽으로만 닳을까?
한쪽으로 지우쳐 사는 삶이 문제였을까?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찬성 아니면 반대,
중립이 없는 세상에서 견뎌내기 위한 안간힘 같은거,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으려는 몸짓 같은거
그 사이에 허공이 들어와 산다
허공은 열린 공간
누구라도 주인이 될 수 있는,
'poem > 時雨의 시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잇몸의 위력- 김진완 (0) | 2007.10.19 |
---|---|
식당의자- 문인수 (0) | 2007.10.19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0) | 2007.10.09 |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브레히트 (0) | 2007.10.04 |
메시지- 자크 프레베르 (0) | 2007.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