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세월이 가면

shiwoo jang 2007. 11. 1. 20:45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1956년 이른 봄 동방 싸롱 맞은 편, 빈대떡을 안주로 파는 경상도집 이라는 작은 대폿집에 박인환과 친구인 언론인 이진섭, 테너 임만섭 등이 둘러 앉아 서로 대폿잔을 돌리고 있었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박인환이 그날따라 말수도 없이 앉아 대폿잔만 들이키고 있더니, 문득 부스럭거리며 종이와 팬을 꺼내 시를 적어나갔다고 한다.

 시를 쓴 종이쪽지를 친구인 이진섭에게 내보이자, 이를 받아든  이진섭이 이내 그 시에 곡을 부텨 한 편의 노래로 만들었고 이 노래를 테너 임만섭이 시창을 하게 되고 이내 세 사람은 합창이나 하듯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래에 취하고 또 술에 취한 이들은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노래 소리는 대폿집 깨진 유리창 밖으로 ... 명동의 밤거리로 퍼져 나가고 이노래를 들은 지나던 사람들 하나 둘 모여 들어 마침내  대폿집 경상도집은  축제의 분위기로....

그  이틀 뒤 시인은  답답하다는 말을 남기고  서른 한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이 노래는 훗날 명동의 엘레지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 이 시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토요일 시인 박인환 탄생 81주년 기념으로 박인환 시의 재조명이란 주제로

학술 심포지움을  위한 준비 중입니다.

그래서 요며칠 박인환의 시에 푹, 박인환이라는 시인에 푹,

박인환이라는 한 인간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 노래 흥얼거립니다.

박인환은 댄디보이였고 빼어난 스타일리스트, 리얼리스트, 휴머니스트, 모더니스트로

다양하게 살다갔습니다.  김수영은 그를 코스튬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잘 알려지 몇몇 시 외에 70여 편의 시를 남기고 갔군요.

이래서 또 박인환의 모든 것 그리고 50년대의 모더니즘에 대해 깊이 알게 되는군요.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머리는 쬐끔 아프지만....

그래도 즐기면서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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