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shiwoo jang 2007. 9. 23. 22:37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가는 이삿집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

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이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햇살아래 트럭에 실린 이삿짐은 그렇듯 사람을 짠하게 한다

아니 햇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햇살 아래서 들여다 보면 나도 참 초라해 보인다.

숨겨둔 어둠 같은 것, 죄의 찌꺼기 같은 것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일까

하긴 요즘 이삿짐이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주 소박한 자취생의 이삿짐 정도라면 그럴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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