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가는 이삿집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
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이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햇살아래 트럭에 실린 이삿짐은 그렇듯 사람을 짠하게 한다
아니 햇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햇살 아래서 들여다 보면 나도 참 초라해 보인다.
숨겨둔 어둠 같은 것, 죄의 찌꺼기 같은 것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일까
하긴 요즘 이삿짐이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주 소박한 자취생의 이삿짐 정도라면 그럴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