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바람-최승호

shiwoo jang 2007. 3. 17. 19:46

바람

 

                       최승호

 

 

1

날이 없는 칼처럼

그 무엇이든 도려내는 고비의 바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울부짖으며

허공을 물어뜯는 고비의 바람

트랙이 없다 경마도 없다

돈에 목을 매는 마꾼도 없다

발굽 없이 힘차게 달리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엉덩이도 갈기도 없는

암컷도 수컷도 아닌

바람이 텅 빈 해골들을 박차면서 달리고 있을 뿐이다

고삐도 없이

채찍도 없이 달리는 바람

누런 흙먼지를 게우며 달리는 바람

바람은 어디에서 어디로 달려가는가

그걸 알면 바람이 막 달리겠는가

 

2

바람이 거세다

뼈들이 겅중겅중 사막을 뛰어다닌다

 

 

- 고비를 다녀온 그의 강연을 들은 적있다

고비를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은 탓인지 그의 이야기는 온통 고비였다

사막에서 얼마나 막막했는지... 얼마나 고독했는지

사막의 바람이 어떠했는지...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나는 고비 한가운데 있는  착각에 빠졌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살아있었다.

수도승을 연상 시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시가 왜 그렇게 건조했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후 한동안 고비를 꿈꿨다.

언젠가 내 인생의 고비에서 나는 말없이 고비로 떠나리라 다짐했다.

꼭 그렇게 되리란 걸 나는 믿는다.

언젠가 산티아고의 순례자가 되어 길 위에 떠다니게 될 나를 믿듯이...

언젠가 나는 고비의 모래바람 속에 나를 던져 놓으리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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