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어두운 골목 붉은 등 하나

shiwoo jang 2006. 12. 18. 12:08
어두운 골목 붉은 등 하나

이병률


상가 음식에서 착한 맛이 난다는 생각을 하는데
오래
모르는 문상객들 틈에 앉아 눈 맞춰가며
그래도 먹어야 하는 일이 괜찮아진 지 오래

조금 싸다가 한 며칠 차려 먹으면 좋겠다 싶게
상가 음식은 이 세상 마지막 맛인 듯 맛나고
상가를 지키는 이들의 말소리는 생전에 가장 달고

배고프지 않았는데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건지 몰라
나무젓가락 포장지로 접을 걸로
탁자 밑에 알지도 못하는 글씨를 쓰고 있노라면
국 한 그릇 더 떠오며
등짝에 손을 얹는 두툼한 고인의 손실
상주를 바짝 업어 왁자한 술청으로 내빼고만 싶은데
술 한잔 받으라며 어깨를 누르는 고이느이 텁텁한 숨결
영정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며
착하게 온전하게 살다 가느냐며 묻고 싶은데
번번히 망설이다 방을 나서는 길
복잡한 신발이나 가지런히 해놓고 싶어도
아무리 세어봐도 한 사람의 몫이 모자라고
나는 돌아갈 때
어둑한 문간에 붉은 등 대신
신발을 벗어두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생각한지 오래



-상가에서 늘 머리속을 맴돌던 생각들을 이 사람은
가지런히 잘 정리했구나 싶다
무릎치며 공감할 생각들 틈에서 나는
상가의 국밥과 동동 떠 다니는 밥알들을 떠올리는데
산다는 건 빠알간 국에 말은 밥알을 꿀꺽 삼키는 일,
낯설지 않은 그 일이
낯설고 송구스럽게 느껴지는 상가에서의
때늦은 허기 밀어내기같은
일년의 끝자락에서 꼭꼭 씹어 먹는 이 한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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