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탁족- 황동규

shiwoo jang 2006. 3. 10. 18:45

탁족

 

 

           황동규

 

 

휴대론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

입을 때

흔들어도 안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앚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들!

인간의 손을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그대로 새겨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고 푼 것이 어디 있는가?

 

 

 

-아직은 이른 계절이지만,

어디, 소쇄원 어디쯤 바지 자락 걷고

물에 발을 담그고 싶다,

담그고 싶은 것이 발 뿐이랴

손도 어수선한 머리도 찌든 마음도

맑고 서늘한 물에 헹궈보면

맑아져 세상의 것들이 다 청청하게 보일 것 같다

올해는 꼭 소쇄원 언저리에서 발 담그고 싶으다

모기와 합작으로

문신도 몇개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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