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빈집- 기형도

shiwoo jang 2006. 3. 9. 10:05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그는 아직 갇혀있을까?

그는 가고 나는 그를 조문하네

그와 나 사이에 추억할 것이라곤

일방적인,

한번도 같은 시공에 머문적이 없으므로,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와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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