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
내게는 양면의 칼날
한번 쯤은 나를 추동하는 힘이 되어 주었을까?
오랜만에 기형도전집을 펼쳐들고
예전에 내가 줄 그었던 시, 시귀에 다시 멈춘다
그때의 나는 어떤 심경으로 밑줄을 그었을까?
다시 새로운 밑줄 더하며 훗날의 나를 다시만날 날,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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