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아무르 강가에서- 박정대

shiwoo jang 2006. 3. 1. 21:22
 

아무르 강가에서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 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 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 밑의 어둠

내 머리위의 어둠, 내 늑골이 첩첩이 쌓여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도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양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 같은 한 채의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시는 편안하고 쉽게 읽힌다. 편안하게 읽힌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안에 풍부한 운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습니다로 끝맺는 경어체의 종결의미 탓만이 아니라 어느 한 구절도 걸림이 없이 물 흐르듯 매끄럽다. 이 시는 억지로 만든 시가 아니라 한달음에 쓴 시라는 것이 느껴진다. 시어들 또한 쉽고 평이하다. 아무르 강가에 서서 아니 어떤 강이라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아무르가 주는 말의 울림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사랑을 뜻하는 이태리어 아모르가 연상이 된다.  실제 아무르강은 러시아에 있는 강이다.  러시아라는 말이 주는 이국적이고 쓸쓸한 정취를 이미지로 끌어 들일 수 있으니 아무래도 아무르강이 적당하겠다. 아무르강에서 어스름의 시간에서 서성이며 저녁을 맞는 정경을 그려내고 그 시간 안에서  늑골 깊숙이 박혀있는 그대를 끌어내어 추억하고 아직 보내지 못한 그대를 초저녁별로 걸어두는 내면의 전경화에 성공한 시가 아닐까한다. 여기서 그대의 존재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유목민, 그리움의 국경 ,시간의 경계, 허술한 말뚝이 주는 아슬함과 위태함이 깊은 여운을 더해 줘 이 시가 주는 공명을 길게 해준다. 이 시의 가장 좋은 점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시라는 것이 아니라 긴 울림을 가지는 시라는 것이다. 이 시는  독자가 마치 아무르강가를 서성이이며 초저녁별을 기다리다가 자신이 초저녁별로 뜨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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