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길에서 만난 사람들

시인 마종기와 함께한 화요일

shiwoo jang 2005. 10. 27. 01:04
 

예순을 훌쩍 넘긴 한 시인이 쑥스러운 듯, 다소 자신 없는 듯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모습을 생각해 본적이 있으신지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문학, 작가의 목소리로 남다' 라는 긴 제목의 10주간의 프로그램 중 그 두 번째 시간이었던 어제는 마종기 시인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어제 마종기 시인은 참으로 조심스럽게 운을 뗐습니다. 우리 땅을 떠나 산지가 오래 되었고 자신이 떠난 건 60년대라 자신의 시낭송은 60년대 구식 풍이라며 어색한 듯 가만가만 자신의 시를 한행, 한 구절을 조심스럽게 읽었습니다. 평론가 최성실의 진행으로 마종기 시인은 자신의 등단작인 ‘해부학 교실1’을 시작으로 자선(自選) 시를 초기 작품부터 꾸밈없고 소박한 음색으로  한편한편 낭송했고 그 시를 지은 상황과 배경, 혹은 심경을  차분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시를 통해 삶과 어떻게 화해하며 살아왔는지,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시를 쓰고 싶었는지, 그와 교류하고 따스한 우정을 나누며 같이 나이 먹어가는 친구, 혹은 먼저 간 친구 이야기, 지금도 그 이야기를 꺼내면  눈자위가 붉어지고 목울대가 먹먹해지는 먼저 이승을 떠난 아우 이야기 등 그의 내밀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 주었기에 시편마다 그의 삶과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익히 아시다시피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시에 입문하게 된 시기가 의대3학년 시절 해부학 실습을 통해서 막 생명에 대한, 인간의 몸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던 때였다고 했습니다. 그 시기에 그는 죽음을 통해 생명을 보았고 어둠 속에서 밝음을 찾았던가 봅니다. 그의 등단작 가운데 한편인  '해부학 실습1' 통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보면서 생명을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이 마치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다시 사는 환희에 들떠/ 넘쳐나는 개선가/중략/여기는 먼 먼 시대로부터 생명의 온기를 감사하는 서정의 꽃밭.


의대 수업과정에서 정신과 병동을 거치면서 ‘정신과병동’이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는 환자와 밀착되었고 한 순간 환자와 동화되는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1966년 도미 미국에서인턴생활을 시작한 그는 ‘증례2’라는 시를 썼습니다. 새로운 경험과 문화의 충격 그리고 외로움, 이민자가 느꼈을 향수가 부레이셔 할머니의 외로움으로 감정이입이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시를 통해 그의 시는 농밀한 일상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가 어렵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시에서 관념적인 단어 상태, 관계를 없애려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시인의 체온을 느끼고 시의 온기를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인과 독자 사이에 도매상이 없는 직거래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국의 문단 사정에 어두웠다고 했습니다. 시인들이 어떤 시를 쓰는지 어떤 생각들이 시풍이 문단의 분위기였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쉬운 모국어로 시를 쓸 수 있었고 오롯한 자신의 생각대로 시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소책자에 실린 열편이 넘는 시를 그는 그의 마음을 담아 읊조렸습니다. 화려한 기교도 수사도 없는 그의 시처럼 그의 읊조림 역시 그러했습니다. 시 ‘묘지에서’를 읽을 때 그의 목소리는 젖어있었고 눈시울은 붉게 충혈 되었습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시인에게 아우의 죽음은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로 남았나봅니다. 그와 함께한 한 시간 반 동안 그의 삶의 편린들과 면면을 함께 더듬으며 그의 아픔과 슬픔 속으로 함께 녹아들었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생명과 희망의 전언을 들었습니다.


   시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야하고 운명을 긍정하는 힘을 지니며 슬프고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 힘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시는 시인과 함께 보고 살고 죽는 살아있는 체온을 가진 것이고 시인은 시를 끌어안고 수긍하고 살아가야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삶의 관한, 희망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전처럼 가볍지 않음을 느꼈다면 한 시간 반의 시간은 제게 일년 반이라는 시간 보다 가치 있는 시간이었겠지요.


결코 달변이라고 할 수 없는 시인의 어투와 음색을 떠올리며 되새김질을 하듯 그의 작은 자선집을 되짚어가는 늦은 밤, 내 안의 시와 나와 화해를 위해 가만히 손을 내밀어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