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그림이 있는 풍경

그림 한 장의 산책-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shiwoo jang 2005. 10. 20. 13:31


라스 메니나스는 벨라스케스의 유작입니다.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지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시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20세기의 화가, 미술 전문가들에게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화가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은 사람이 벨라스케스라고 합니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위대한 문학 작품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감정, 상황, 인물들을 화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대의 삶과 정치를 효과적으로 그려냄으로서 17세기 전체를 반영합니다. 17세기 당시의 스페인의 회화는 종교의 색채가 강합니다. 악명 높은 종교재판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화가들의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르네상스를 관통하던 누드화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지요. 그 시대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누드화 '거울을 보는 비너스' 또한 벨라스케스의 작품입니다.


당대의 유명한 화가이자  스승인 파체코는 일찍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항구도시 세비아 출신인 그를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이후 벨라스케스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동향의 후원자였던 올리바데스 백작의 후원으로 궁정화가, 왕의 공식 화가의 지위에 올라 브레다의 항복, 펠리페4세의 기마상, 메니퓨스와 이솝, 교황 이노센트 10세, 거울을 보는 비너스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라스 메니나스는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이며 유작입니다. 그의 예술세계를 집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이지요. 그는 이 작품에서 빛, 인간 ,공간을  적절하게 배치했습니다. 라스 메니나스, 즉 시녀들을 보는 견해는 다양합니다. 그 많은 견해도 동조하거나 반론을 제기 하면서 느낌대로 마음의 읽는 대로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면 되겠지요.


이 그림은 일반적으로 한쪽으로 쏟아지는 빛이 아닌 복합적인 빛을 보여줍니다. 빛이 들어오는 곳이 세 곳입니다. 어디일까요? 먼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 오른 쪽 뒤편의 작은 창, 그리고 뒷문에서 들어오지요? 세 곳에서 들어온 빛은 어우러져 그림의 깊이와 공간감을 살려줍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도대체 누구를 그린 걸까요? 누가 이 그림의 중심일까요? 앙증맞은 마르가리따 공주일까요? 그림의 제목처럼 공주의 시중을 들고 있는 참한 시녀들일까요? 아니면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 자신일까요? 거울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펠리페 4세 부처일까요? 여러분은 누구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가만히 그림 속의 화가와 눈을 맞춰보세요. 그 눈은 누굴 보고 있지요? 그의 눈은 몇 백 년을 세월을 기다려 지금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바로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화가의 눈은 관람자를 향해 있습니다. 그는 몇 백 년의 세월을 뛰어 현재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을 그리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7세기  스페인은 절대 왕정의 국가입니다. 당시 국왕의 지위는 오늘날의 입헌군주국가의 국왕과는 비교가 될 수 없겠지요? 말 한마디면 바로 목이 달아납니다. 그런데 불경스럽게도 국왕 부처는  물론 거울 속이긴 하지만 제일 뒤에 있습니다.  그 앞에 자랑스럽게 십자기사단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심벌을 가슴에 그려 넣은 다소 자부심에 차 있는 화가, 그리고 시녀들, 다음 세대에 왕통을 이어갈 공주와 궁중에서 조롱과 익살로 웃음과 활기를 주는 살아있는 장난감이었던 난장이들과 개가 제일 앞에 위치했습니다. 거꾸로 된 계층구조로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림을 통한 체제전복을 꿈꾼 것일까요?


벨라스케스는 지위에 민감했다고 합니다. 그가 기사의 작위를 받은 것은 이 그림이 그려진 후의 일이라고 하네요. 그는 이미 완성된 그림 위에 자랑스럽게 기사의 심벌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든 예술가는 자유로워야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합니다.  벨라스케스 또한 예외가 아니었겠지요. 명예와 부를 얻었지만 그는 노예나 다름없는, 국왕의 화가의 지위는 버리고 싶은 지위였겠지요. 현대로 치면 전속 사진사 같은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화가로서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닌 구속되어 있는 신분이 그에게는 족쇄가 아니었을까요? 이런저런 정황에서 그의 그림을 볼 때 화사하고 부드러운 그림만이 아닌  뭔지 모를 깊은 슬픔이 배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서 그는 그런 표정을 지었나봅니다.


벨라스케스는 20세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카소는 이 그림, 시녀들을 40회나 패러디를 했다고 합니다.  프란시스베이컨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의 연작, 그리고  마네 또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작가의 영향은 당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 까지  영향을 미쳐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뮤즈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밤, 어쩐지 그 눈빛이 떠올라 뒤척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