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과 터널
이성미
가을로 들어가서 겨울로 나왔어. 길고 긴 기 차처럼
터널은 달라지지 않는 기차인 것처럼 있었지. 서 있는
기차에서 나는 달렸어. 기차처럼
풍경을 뒤로 밀었지. 달리는 것처럼, 의자를 타고 달렸
어. 잠깐이라도 생각을 하면 안되요.
이 어둠에 끝이 있을까. 라는 문장 같은 것. 그런 순서
로 불안을 배열하면 안 됩니다. 기차는 기차니까 길로, 나
는 그전에
늦가을비를 맞았다. 어쩌면 겨울비. 옷은 늦가을 비에
젖어 축축했고 무거웠고.
겨울비 내리던 날이라는 노랫말이 있었지, 가을비가
아니라 이건 겨울비. 그렇게 생각하면 겨울비 노래가 입
에서 흘러나온다.
신발 밑창에 달라붙는, 비에 젖은 단풍잎. 쩍, 쩍, 발밑
을 따라다니는 붉은 단풍잎. 나는 쭉, 쭉, 미끄러지며,
터널을 향해 걸었지. 늦을 비거나 초겨울 비를 맞으
며, 긴 다리와 긴 팔로 물속을 헤엄치는 거미처럼 걸었지
걸으며 들어갔지. 터널에서 터널로 가을에서 겨울로.
그렇다니까. 가을터널로 들어가 겨울터널로 나왔어.터
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는 말이니? 그랬는데, 투명한 물이 얼어붙
어서, 불투명한 흰 눈이 되었다고 물리학자도 화학자도
생각하지 않았지. 나는
어디로 나온 거지? 여기는 더 추운데. 더 날카로운데.
더 아름답구나. 그건 이상하지만,
그런 힘이 있어서, 아름답고 알 수 없는 눈 속으로 뛰
어들었다.
-2020년, 다른 시간, 다른 배열, 문학과 지성사
_사노라니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이 얼마나 많은 지. 발바닥에 들러붙는 질척한
생이라는 것을 매달고 그 터널을 빠져나오니 어찌 된 셈인지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뭐 그런거지.... 거기서 또 그런데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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