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닌자- 서대경

shiwoo jang 2020. 3. 14. 12:59

닌자

 

                                  서대경


 

검은 복면의 사내가 나의 머리를 허리춤에 매달고 달빛 깔

린 기와지붕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머리를 필요

로 하는 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욕조

차 나오지 않았다, 이봐, 대체 누가 날 죽이라고 했고? 복면

의 사내는 말없이 처마를 타넘었다.

 

그는 놀랍도록 빨리 달렸고 내 몸은 그의 허리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내 머리의 낭패한 듯한 시선을 받으며 죽어라

뒤쫓아갔다. 머리가 없어서 그런지 균형이 안 잡혀 비틀거

렸다. 나는 내 머리를 쫓아오는 내 몸을 멀뚱멀뚱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허공에 뜨는 느낌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달빛 깔린 골목이 눈부셨다. 복면의 사내는 힘에 부치는지

점점 더 가쁜 숨을 내쉬고 이썼다. 제기랄 조금만 더 빨리,

내 머리가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내 머리가 분명한데…… 이런 머리

…… 이런 머리로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내

머리를 똑똑히 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사내는 달리고

달빛은 새파랗게 내리고…… 이런 머리가…… 이런 머리로

…… 하고 내 머리는 중얼거렸다

 

 

나는 내 몸보다 사내가 내 몸 같아서 그의 몸이 기우뚱할

때 어어 조심해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지만 머지않아 귓가

를 휙휙 지나가는 바람과 바람에 ……실려오는 벚꽃 향기에 잠

잠히 취해버렸다. 내 몸은 비틀대면서도 용케 사내를 따라

지붕을 타넘었다. 타넘고…… 타넘고…… 타넘고……

러다 갑자기 사내가 지붕 끝에서 내 몸을 향해 홱 돌아섰다.

제기랄! 죽은 놈이 죽어라 쫓아오면 어쩌란 거야! 사내는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거대한 벚꽃나무 숲 아래로 몸을 날

렸고 나는 허공에 휩싸이는 내 머리의 아득하고 환한 외마

디 속에서 그만 정신을 잃었다.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 문학동네


- 기발한 상상력을 읽는 즐거움, 내 몸과 떨어지 내 머리가 , 죽은 몸이 죽어라 달리는.

그러다 까무룩 의식을 잃는 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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