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일정으로 문경을 다녀왔다. 문경이라고 하면 문경새재를 떠올리게 될 만 큼 문경새재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여행은 문경에 별장이 있는 김대표의 초대로 이루어졌다.
김대표는지난 여름 터키여행을 함께했던 분 중 한분으로 사업가이지만
예술애호가로 서예, 도예, 사진 등을 즐기는 분이다.
터키를 여행했던 분들은 지난 가을 용인에서 다시 만나 회포를 풀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지 2차 MT격으로 다시 문경에 모였다.
이런 모임이 지속 된다는 것은 그 만큼 함께한 여행이 즐거웠고 함께 공감했다는 의미로 풀 수 있을 것 같다.
문경은 내가 사는 원주에서 차로 1시간 30분정도 국도를 달리면 여유있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래서 느긋하게 곁눈질 해가며 차를 몰았다,
그럼에도 약속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문경 청운에 있는 김대표 댁에 가방을 내려 놓고 다른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담소 나누며 기다렸다.
열명이 조금 넘는 일행들이 모이자 김대표는 조선요로 우리를 안내했다.
김대표가 도예를 배운다는 조선요는 지금도 전통방식으로 자기를 굽는데 가마의 생김새가 독특했다.
이 가마는 조선 헌종 때인 1843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특유의 칸 가마로 망댕이 가마라고 한단다.
망댕이란 길이 20~25㎝ 굵기로 사람 장딴지와 같은 모양의 진흙덩어리를 말한단다.
이 불린 덩어리를 쌓아 칸을 이루는데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크기가 커진 여섯 개의 칸으로 합쳐져 망댕이 가마가 된다.
길이는 17.35m이며 아궁이에 이어 첫째 칸부터 마지막 끝 칸에 이르기까지 12도의 경사로 이어진다.
망댕이가마는 구조가 독특해서 불길의 흐름을 부드럽게 해주고
일반 가마와는 달리 가마 안에서 불을 지피면 그릇이 더 견고해지는 것이 장점이란다.
다른 도요를 몇번 방문한 적이 있어 가마를 여러 번 봤지만 이 가마는 생김새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조선요는 8대가 대를 이어 백자를 빚었던 가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8대인 김영식 장인이 망댕이 자기로
백자를 비롯한 다양 한자기를 빚는다고한다.
주로 다기나 식기류의 생활자기를 빚는데 자기로 빚은 와인잔, 주작이 인상적이었다.
조선요는 망댕이박물관도 운영하여 가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8대인 김영식 장인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볼 수 있었는데그밖에 장인이 작품으로 빚은 달항아리와 목이 긴 술병 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와
빛깔을 내기 힘든다는 자줏빛 진사 자기와 복숭아빛 자기가 인상적이었다.
조선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문 앞에서 기다렸던 김영식 장인이 함께 다니며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소개해
망댕이요와 도자기 제작에 관련된 많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장인은 특별히 다실로 초대하여 향기 그윽한 차를 대접해 주었는데 뜻하지 않게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었다.
은은한 빛깔의 다기로 마시는 차맛 또한 일품이었다.
역시 차는 맛과 향기와 눈으로 마시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조선요를 돌아보고 맛있다는 문경 한우로 저녁을 먹고 김대표의 벽난로가 있는 집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가벼운 술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지라 여행이야기, 일상이야기, 일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사는 지역도 , 직업도, 연령대도 다양한 사람들이어서 그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어쩌다보니 새벽까지 이야기가 이어졌고
다른 이의 삶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음을 다시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은 전날의 여파로 다들 늦잠을 잤다. 좀처럼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고양이세수로 아침 단장을 마치고
다슬기해장국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문경새재로 향했다.
엇그제 내린 눈이 미처 다 녹지 않아 미끄러운 문경새재를 조심스레 걸었다.
눈 때문이었는지 새재를 찾은 사람들이 적어 비교적 한적한 풍경 속에서 한담을 나누며 걸을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온 고즈넉한 풍광이 조선시대로 타임슬립 해보고 싶을 정도로 상상력을 자극했다.
문경새재에서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매우 다양하다. 고갯길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라고,
고갯길 주변에 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데서 유래 되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고갯길을 의미하는 ‘새(사이)재’에서 연유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만든 고개라는 뜻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새로 낸 고갯길’으로 보인다.
문경새재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문경(聞慶)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문경새재는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들이 좋아했던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
문경새재는 태종 13년(1413)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새재가 열리기 전까지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계립령의 하늘재가 주요 교통로였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
새재는 세 개의 관문을 따라 옛날 선비들이 다니던 옛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약 10km에 이르는 구간이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새재길은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이 많이 남아 있고
임진왜란 이후 설치된 세 개의 관문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첫째 관문은 주흘관(主屹關)으로 숙종 34년(1708)에 설치되었고
세 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두 번째 관문은 조곡관(鳥谷關)으로 중성(中城)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은 조령관(鳥嶺關)으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문경새재는 20세기 초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이화령 고갯길이 만들어지면서 패도 되었지만
새재에 설치된 관문과 더불어 새재 고갯길은 잘 보존되어 있다.
새재길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와 임지를 떠나 새로 부임하는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만나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가 남아 있다.
관문을 지나 오르는 옛길에는 아름다운 주변의 경치와 함께
산불을 막기 위해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서 있고
정자와 주막터, 성황당 등이 있어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음미할 수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과거길을 가던 선배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슬해서, 흘러내릴 것 같은 저 바위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시험이 주는 압박감으로 때로 도망친 선비도 있지 않았을까?
이러 저런 생각을 하며 새재를 걷자니
마음이 갑자기 처연해졌다.
일행 중 한분이 오늘이 합창단 연습날인데 빠지고 왔다며
연습곡을 조용히 불렀다.
독립가와 희망가라 선곡이 유별나다 싶어 어느 합창단인지 여쭈었더니 흥사단 합창단이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노랫말이 마음을 건드리고 간다.
일행 몇분이 같이 흥얼거린다.
길이 미끄러운데다 연세드신 분이 있어 3관문까지 가질 못하고
중간에 발길을 돌려 돌아왔다.
눈과 길, 산자락 흐르는 물이 가만가만 아름답다.
소리들은 한없이 투명하다.
문득
우리 땅, 아름답다는 생각, 그리고 이 사람들은 어떤 인연으로
이 아름다운 길을 함께 갈까...
그런 생각들이 오고갔다.
가볍게 막국수로 점심을 먹고 헤어지려 했는데 김대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문경온천 앞에 있는 근사한 음악감상실이 있다고 했다.
음악에 관심 많은 또래들의 눈이 빛났다.
이심전심의 순간, 들렀다 가자!
그렇게 슈필리움을 찾았다. 슈펠리움은 음악을 사랑하는 공학박사 출신 주인장이
아예 작정하고 음악감상실로 지은 건물이다.
입장료 1만원이면 차를 마시고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특별한 공간,
이것이야 말로 세렌티피디, 우연한 행운이 아닐까?
웅장하고 화려한 음들이 공간을 가득채웠다..
협주곡 한곡을 듣고 가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피아니스트 민선생이 선곡했다.
선곡한 곡은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이었는데 묵직한 저 스피커가 음을 한층 풍성하고 다채롭게 했다
한 시간 동안 모두들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음색에 빠져들어 한곡 더, 한곡 더를 연발하다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피무터 연주의 사계, 강렬한 바이올린 음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아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
일행들은 온전히 음악만 들으러 여기 다시 오자 다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마리아 칼라스의 배웅을 받으며 ....
슈펠리움이라는 공간을 발견한 것은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여행은 이런 예상치 못한 행운이 있기에 매번 더 기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짧은 1박2일의 문경은 아.름.다.운 . 우리 땅을 다시금 깨닫게하는 여행이었다.
올해는 우리 땅 구석구석을 더 많이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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