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윤제림- 사랑을 놓치다

shiwoo jang 2010. 4. 15. 14:41

 

나는 결국,

죽을 때까지 실업이 못 된다

열부 춘향이 처럼,

남산 소낭구처럼,

 

물론,

묶여서도 같혀서도 한양성 오가던

춘향이만이야 못하겠지만,

눈 박힌 쪽말고는

고개 한번 돌려본 일 없는

저 소낭구만이야 못하겠지만,

 

그만 두겠노라고

흰소리하다가는, 눈 뜨면

또 이렇게 일 나오느니!

평생직장,

시,

 

 

사람을 땅에 묻는 뜻은

 

 

불에 끄슬려 바람에 날아가게 두지 않고,

사나운 새나 그악스런 짐스으이 먹이가 되게 하지 않고,

그냥 썩어서 거름이나 되게  놔두지 않고,

오늘은 또 누구를 심는가,

뙤약볕 아래 저렇게 한나절 구덩이를 파고

새참까지 먹으며 웃고 떠들다가,

격양가를 부르며 붉은 흙 쾅쾅 때리고 밟다가

막걸리 쏟아붓고 절하며 우는 뜻은

농부의 마음이다

남부여대 떠돌아다니는 일을 그만두었던

그 여러 천년 전부터,

죽어도 베고 누워 죽어야 한다고 배워온

종자날곡들의 종요로움,

씨감자 다ㅟ 눈 달린 생명들의 정직함을 믿어온

농부의 신앙이다.

 

많이 도  심었구나

곧, 거대한 숲이 될 것 만 같은

사람의 밭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손이 어는지 터지는지 세상 모르고 함께 놀다가 이를테면,

고누놀이다 딱짙치기를 하며 놀다가 " 저녁 먹어라" 부르는

소리에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달아나던 친구의 뒷모습이 보

였습니다. 상복을 입고 혼자 서 있는  사내 아이 한테서,

 누런 벽기 위  '상복 대여' 따위  스티커 너저분한 화장실

타일 벽에 " 똥 누고 올게" 하고 제 집 뒷간으로 내빼더니 ㅇ영

소식이 없던 날의 노구판이 어른거렸습니다.

 " 짜식, 정말 치사한 놈이네!" 영안실 뒷마당 높다란 옹벽을

때리며 날아와 떨어지는 낙엽들이 친구가 던져두고 간 딱지

장처럼 내 발등을 덮고 있었습니다." 이 딱지, 너 다 가져!"

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사랑을 놓치다

    - 청산옥에서 5

 

...... 내 한때 곳집 앞 도라지꽃으로

피었다 진 적이 있었는데

그대는 번번이 먼길을 빙 돌아다녀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 사랑!

쇠북 소리 들리는 보은군 내속리면

어느 마을이었습니다.

 

또 한 생애엔,

낙타를 타고 장사를 나갔는데, 세상에!

그대가 옆방에  든 줄도

모르고 잤습니다.

명사산 달빛 곱던

돈황여관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사랑

 - 청산옥에서 12

 

살 찢은 칼이 칼끝을 숙이며

정말 미안해하며 제가 낸 상처를

들여다 보네.

 

칼에 찢긴 상처가 괜찮다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칼을

내다보네.

 

동백꽃

 

협상은 또 결렬된 모양이다

오늘도 북소리에, 일제히 투신,

 

동백꽃은 파업이 너무 길다

 

 

 윤제림 시인의 시를  낭독하다보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공감이랄지...

그의 시는 편안하게 읽힙니다.

그리고 편안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쩜 그렇게 잘 읽히는지요.

그래서 윤제림 시인의 시를 편애하게 되나봅니다.

윤제림 시인의 시집 '사랑을 놓치다' 에서 몇편 옮겼습니다.

'poem > 時雨의 시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문재- 소금 창고  (0) 2011.06.23
獨酌 독작- 류근  (0) 2010.04.24
폭포- 김수영  (0) 2010.04.06
딸기- 김혜순  (0) 2010.04.03
김종삼- 북치는 소년  (0) 2010.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