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good/책상앞에서

비오는 날의 독서 -원주투데이 기고글

shiwoo jang 2010. 3. 16. 16:29

 

 

 

 

비오는 날의 독서

2010년 03월 15일 (월) 14:59:42 장시우 시인 자유기고가
   
 
   
 

비가 내린다. 오늘 비는 그냥 보기에도 차가운 느낌이 덜하다. 이 비는 겨울이라는 긴 문장의 마침표일까? 봄을 부르는 비라기엔 많은 양이다. 집 안팎이 온통 물기로 가득하다. 집을 나서려던 계획을 접고 집에 머무르기로 한다. 낮고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가벼운 보사노바 리듬의 sundy 앨범을 오디오에 넣고 볼륨을 조금 더 높여 집안 가득 음악을 채운다.

커피 생각이 난다. 핸드밀에 원두를 간다. 오늘의 커피는 킬리만자로의 선물, 왜 그런지 자꾸 킬리만자로의 눈물로 잘못 읽게 되는 커피다. 짙은 커피향이 가볍게 날아다니는 음악 사이 빈틈을 채워준다. 핸드드립 커피는 인스턴트커피에 비하면 소소하게 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커피를 마시기까지 준비하는 시간도 길다. 핸드드립커피는 향이 매혹적일 뿐 아니라 뜸이 들면서 신선한 커피가 머핀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 푹 꺼지는 커피의 한숨을 볼 수 있다. 투명한 물이 커피빛깔로 물들어가는 모습도 눈으로 볼 수 있어 좀 번거롭지만 핸드드립커피를 선호하게 된다.

커피를 앞에 놓고 습관처럼 책을 펼친다. 나의 책읽기는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내 책상 위에는 책이 여러 권 저마다 액세서리처럼 책갈피를 끼고 있다. 오늘 내가 펼친 책은 김경욱의 소설 '위험한 독서', 우연찮게 어제 읽다가 덮어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구절이 나온다. 인용한 문장이 몇 페이지쯤에 나온 구절인지 다시 '금각사'를 펼쳐 읽다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어쩌다 접점이 있는 두 권의 책을 한꺼번에 보게 된 걸까? 책에서 인용된 다른 작가들의 책 제목을 메모지에 옮긴다.

'위험한 독서'를 덮고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의 '작가의집'을 읽으며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장 지오노, 딜런 토마스의 집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작가들이 살았고 창조하고 고통받은 그곳, 스스로 택한 고독과 스스로 가둔 글감옥에 갇힌 그들의 추억에 질서를 부여하고 불안을 달래주며 사유에 활력을 불어 넣은 집, 대체로 작가들은 집에 자신을 가두고 창조적 상상력이 저 먼 우주 저편까지 펼쳐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곤 했다. 그런 작가의 집을 초대 받은 양 기웃거려본다. 친절하게도 '작가의집'은 서재 뿐 아니라 그들의 내밀한 침실까지 기꺼이 보여준다.

"어제 온종일 여섯 행을 붙잡고 토목공처럼 열심히 일했다 끝을 내긴 했지만 주무르고 주무르고 다시 주무르고 정리하고 잘라내고 결국 야만적인 소리들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말을 다루는 바보천치일 뿐이다. 분명히 시인은 아니다. 그게 참된 진실은 아니다" 딜런 토마스의 절규가 내 것이 될 쯤 나는 책을 덮고 내 집을 돌아본다. 넓은 정원에서 나무를 가꾸고 꽃을 손질한 그들과 달리 내게는 꽃을 심고 나무를 가꿀 손바닥만 한 땅도 없다. 같은 규격으로 지어진 집 위에 얹힌 내 집은 허공에 떠있었다. 문득 흙이 밟고 싶어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걸어본다. 화단을 제외하면 온통 보도블록이고 시멘트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지만 비는 스미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내 어휘가, 문장이 빈곤한 까닭은 그것 때문이다. 커피는 벌써 식었고 나의 책읽기는 지지부진하다. 이 비는 언제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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