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박현수
해가 가장 길게 혀를 빼어
지상을 오래 핥는 날
상처에 닿을 때마다 붉어지는 혓바늘
하염없이 핥아주는 것밖에
해줄 것이 없는
늙은 암캐의 혓바닥처럼
서러운 온기에
온 머리가 젖어 꿈이 맑아진 풀잎들
치유는 핥을 수 있는
따스한 거리에 있어
핥을 수 없는 곳마다 덧나는 상처들
혓바닥이 지는 곳마다
매미가 자라고
사슴의 뿔이 떨어진다
사람의 눈동자가
지상에서
가장 먼 곳에 올라 맑게 씻기는 날
-아, 그랬구나 혀를 길게 내밀어
상처를 닦아주느라 그랬구나 그래서 길었구나.
여름의 초입 하지에 나는 무얼했을까?
어떤 상처를 꿰매고 있었을까?
내것 혹은 나 아닌 다른이의 것이었을까?
시인의 눈이 따스하고 맑아 부럽다.
나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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