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박물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shiwoo jang 2009. 11. 1. 21:44

박물관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 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 홍조 띤 뺨은 어디 있나요?

칼은 있는데- 분노는 어디 있나요

어두운 해질 녘 류트를 퉁기던 새하얀 손은 온데간데 없네요

 

영원이 결핍된 수만 가지 낡은 물건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어요

진열장 위에는 콧수엽을 늘어뜨린 태

곰팡내 풀풀 풍기는 옛날  파수꾼이

새근새근 단잠을 자고 있어요.

 

쇠붙이와 점토, 새의 깃털이

모진 시간을 견디고 소리 없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고대 이집트의 말괄향이 소녀가 쓰던 머리핀만이

킬킬대며 웃고 있을 뿐,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쪽 구도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나는 어떨까요 믿어주세요 아직 살아 있답니다

나와 내 드레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 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를 열망하듯 말이지요.

 

폴란드 태생의 시인 비스비와 쉼보르스카의 시집 끝과 시작을 펼치면서

그냥 펼쳐지는 페이지의 시를 읽은 것이 이 시이다.

먼지의 시간에서 그녀가 읽은 것이 나는 부러울 뿐이다

박물관에서 그녀는 그녀를 만난 것 같다.

나도 어느 박물관에선가 잠들어 있을지도

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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