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이정록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위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임을
이제야 알랐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 뿐인 줄 알았지
등 뒤에 두 손을 얹자 개딜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손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짐을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위로 얹혔다..
내 손이 짐이 되는 순간이 있어다.
무한 천공의 조춧돌을 가볍게 올릴 위대한 빈손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할머니의 어부바 를 떠올리며
뻣대도 끄덕 없었던
할머니의 든든하고도 둥근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허공 한 채 업고다니는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긴 밤,
뒷짐이 이렇게 아름다운 짐인 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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