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뒷짐- 이정록

shiwoo jang 2009. 6. 26. 00:12

뒷짐

 

             이정록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위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임을

이제야 알랐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 뿐인 줄 알았지

등 뒤에  두 손을 얹자 개딜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손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짐을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위로 얹혔다..

내 손이 짐이 되는 순간이 있어다.

무한 천공의 조춧돌을 가볍게 올릴 위대한 빈손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할머니의 어부바 를 떠올리며

뻣대도 끄덕 없었던

할머니의 든든하고도 둥근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허공 한 채 업고다니는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긴 밤,

뒷짐이 이렇게 아름다운 짐인 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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