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사방이 온통 꽃잎입니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꽃이 지기로 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시인의 시 낙화가 그렇고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그렇습니다.
사월 소리없이 꽃잎지는 봄날 꽃그늘 아래 걸어가면
누구나 아, 하는 감탄사 한자락 튀어 나올것 입니다.
치악예술관 전시장에 가득한
11일 토요일 치악예술관 전시실에도
꽃은 피고 지고....화라락 지고 있었습니다.
4월 10일 부터 15일까지는 한범구 화백의 개인전이 진행형입니다.
토요일 한낮 라디오 뉴스에서는 상춘객들이 넘쳐나는
남쪽바다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봄처녀 아니어도 연분홍치마 입고 어디로든 가서
꽃그늘 아래 서있고 싶은 그런 봄날,
저도 꽃 그늘 아래 서있었습니다.
벽면 가득한 꽃들에 숨이 막히고
그 향기에 대책없이 취해있었습니다.
한동안 그림구경에 빠져 있자니
어쩐지 제 얼굴까지 붉게 물들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만 그렇게 아니더군요.
엄마와 미술관 나들이 온 꼬마아이도
환성을 지르며 환한 웃음이 가실 줄 모르더군요.
엄마, 이건 뭐야..이건 뭐야...
아이는 연신 묻고 엄마는 답하고
보기 좋은 그림이 여기에 또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일까요?
그림을 슬며시 만져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마 엄마가 일렀겠지요.
그림은 만지는게 아니란다.
눈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그림의 이야기를 들어보렴....
2002년 개인전 후 7년만에 다시 작품을 내 보이는 한범구 화백은
이번 전시에 70여점의 유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작은 공간에 걸어 두면 집안이 환해질 것 같은 작품부터 대작까지
그림은 스케일도 색깔도 다양했습니다.
禪적인 그림에서 詩적인 그림까지.....
한범구 화백이 직접 쓴 그림 제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의 모습이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
선문답 같은 제목이지요?
앞서 인용한 조지훈시인의 시구에서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에서
따온 그림 제목도 있었습니다.
꽃 그림에다 시구를 제목으로 붙인
화백의 감성이 고와 보였습니다.
손글씨로 쓴 제목이 수줍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휴대폰도 차도 컴퓨터도 없이 산다는 한범구 화백의 이야기를 잠시 들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문득 화실 풍경이 궁금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담백한 삶과
그림은 어찌 보면 많이 닮아 보였습니다.
아, 이번 전시를 마치면 작품 세 점이 기증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두 점이 시청에 나머지 한점은... 또
시민들의 발걸음이 자주 닿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한범구 화백의 바램이었습니다.
치악예술관 전시장은 규모가 작은편이 아닙니다.
그 전시장을 가득 채울 만큼의 작품 수도 그랬지만
동선을 고려한 작품 배치도 발걸음과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아니 시간을 꼭 내서 전시장으로 꽃구경 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꽃은 화가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화가는 꽃에게 어떤 답을 주었을까?
가시면 뭔가 답을 찾아 오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 좋으시면 화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누실 수가 있을테지요.
그 또한 봄날의 기분 좋은 추억거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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