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사진관이 있는 동네

화요일에 만난 사진

shiwoo jang 2006. 12. 20. 12:39
낮게 내려앉은 어둠을 걷어내고 파고든,  투명에 가까운  푸른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집을 나서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해 걸었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해서  떠날 채비를 마치고 헛기침을 길게 내 뱉는  강남행 고속버스에 가까스로 올랐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고 서서히 밝아오는 차창밖으로 눈길을 두었습니다. 버스는 돌아보는 법없이 바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화요일은  예술의 전당 나들이 하는 날입니다. 예술의 전당내 미술 아카데미에서 20세기 현대미술사 강좌를 듣기 위해서지요. 2년 전 고대미술에서 시작한 서양미술사는  이제 두번의 수업만 남겨두었습니다. 이 강의는 서양미술사를 꼼꼼하게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강의여서 미술애호가에게 인기 있는 수업이랍니다. 이 강의는 매주  다른 강사가 강의를 합니다. 그날 주제에 따라 전공 분야에 따라 강사가 정해졌고 그 강사는 그 두시간의 강의에 혼신을 다합니다. 덕분에  이 강의는  깊이 있고 폭넓은 미술읽기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사시대 미술에서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서 오늘 강의했던  대지미술, 생태미술, 페미니즘 미술까지... 쉽게 접할 수 없고  이해불능의 어려운 현대미술 개념 미술까지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황당하리 만큼 폭넓은 미술사의 큰 강을 한번에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저 겉핥기였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개념정리가 가능할 정도 였으니 그만하면 그간 들인 공, 시간과 노력이 헛되진 않았겠지요.

 

  오늘 강의는포스트 모던의 시각이란 주제였습니다. 다소 생경했지만 호기심을 자극했고 새로운 개념의 미술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물질문명에 찌들어 사는 현대 작가에겐 자연으로의 회귀가 화두가 될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오브제 또한 대형화 되면서도 자연물에 가까이 혹은 자연물을 이용한 작품들이 많아지나 봅니다. 현대미술에서  예술로 인정 받지 못했던 사진 또한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을 받고 사진 예술로 그 자리매김하기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미술을 살펴보면서 사진에 대한, 사진 작가에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진예술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보니 나다르, 만레이,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으젠 앗제 같은 이름들이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침 11월 4일 부터 만레이 특별전과 세계사진 역사전이 예술의 전당내 한가람 미술관에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벼르고 있던 만 레이와 세계 사진역사전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획전시나 특별전이 그렇듯 알려진 작품 한두 점에 그렇고 그런 작품 몇 점 걸려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웬걸요. 65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7개의 다른 색깔의 방에 전시한 작품이 30여점씩, 그리고 55명의 작가들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되어 총 450점의 사진 작품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좋아했던 사진 작가들의 귀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횡재를 했습니다.


                 -  만 레이 와 세계 사진역사전 도록과 입장권 리플릿

 

그 뿐만 아니라  도슨트의 친절한 안내와 차분한  설명으로 사진의 배경지식과 뒷이야기 까지 곁들여 듣는 행운까지 얻어 좀더 깊이 있는 사진 읽기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장의 사진에 얽힌 사진작가의 뒷이야기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는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히기도 하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 된 지금도  그 말이 힘을 가지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같은 대규모사진 전시전은 세계 최초( 우리는 이말을 아주 자랑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지요)라고 하고 특별히  만레이의 사진전은 세계적으로도 몇번  밖에 열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벌써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가 였던 만 레이가 초현실주의의 리더였던 앙드레 브르통이나 마르셀 뒤샹과 교우하며 초현실주의가 무르익을 때인 1920년대에서 30년대의 사진 작업이 주로 소개되어  그가 아꼈던  인물 사진과 함께 작품 사진, 보그같은 패션잡지 에 실렸던 상업 사진등 다양한 사진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 레이의 사진입니다. 그의 연인이었던 키키를 모델로한 브란치스의 누아, 레이디 메이드 미술의 대가, 변기 샘의 작가 마르셀 뒤샹의 뒷모습, 그리고 앵그르의 바이얼린이라는 작품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지요. 앵그르의 모델 역시 키키 입니다. 만 레이는 사진작가이자 화가, 조각가, 오브제 제작자, 영화 감독 등 멀티 아티스트로 활약한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이고 다재다능한 작가로 꼽힙니다. 그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를 넘나들며 세계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의 한사람입니다.


이 작품은 누구나 한번쯤 본 적인 있는 작품이지요?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이지요.앵그르는 바이얼린을 좋아했다네요 뛰어난 연주가 이기도 했다고 하고 이 작품은 앵그르에게 바치는 오마쥬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지금 일본의 사진화랑에서 소장품하고 있다고 합니다.(일본은 일본 사진의 산증인 이시하라 에쯔로라는 분이 프랑스 유학중에  일찌기 사진 컬렉션을 한 덕분에 좋은 사진 작품을 많이 갖고 있다는군요. 이즘도 도쿄사진 미술관 가와사끼 시립 미술관을 중심으로 근대 사진을  중심으로 컬렉션하고 있다는 군요. 이번 전시 작품도 일본에서 빌려온 작품이 많다는.... 약오르게 늘 한발 빠른 일본,)

 


-위의 사진은 로베르 드와노의 무제, 나다르의 조르쥬 상드 입니다.  사진사에서 나다르의 인물 사진을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없지요.  이번 전시에는 다게레오타입 시대와 모더니즘의 황금시대를 거쳐서 21세기 디지털의 보급과 합께 사진인구가 급속히 팽창해서 사진의 전성기를 맞은 현재에 현대사진을 포함해서 근대사진을 대규모로 전시한다는데 의미가 있다는군요. 이 사진들은 대부분 빈티지 프린트로 전시되었고 이런 사진전은 세계의 저명한 미술관에서도 좀처럼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사진전이라고 합니다.( 자부심을...)
 이번 전시회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빌 브란트, 브랏사이 , 로베르 드와노 유진 스미스와 로버트 카파,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으젠 앗제.... 스티글리츠 ...정말 이름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작가들의 작품과 실험정신이 강한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작가중에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 되는 여덟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30여점씩 묶어 각각 다른 컬러의 방에 전시해 한꺼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해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전시는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해서 보고 그 작품의 컬러와 그 작가의 작품의 민감한 변화를 알아채기 좋은 방식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래된 흑백사진 한장이 그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인생마저 바꾸게 한다면 사진 한장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지요 한 사람을 사진작가의 길로 이끌었다는 유진 스미스의 '천국의 정원으로' 같은 작품은  2차 대전이 끝나고 긴 전쟁으로 지치고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다독여주고 어루만져 주었던 작품이지요. 그 작품은 지금 봐도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작품입니다. 사진 한장은 사람들을 분노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지만 무한한 감동을 주고 평화를 느끼게도 합니다. 셔터를 누르는 그 짦은 순간 우리는 무한하게 열린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와 동조해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분노하고

때론 함께 침잠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얇은 한장이지만  사진 한장이 주는 힘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다양한 색깔의 수 많은 작가들과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뜻밖의  그리 흔하지 않은 행운에 감사하며 전시장을 나섰습니다. 처음에 좀 비싸다 생각했던  입장료 만원이 일정을 미루며 전시장에 머물렀던 시간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진에, 세계에 빠져 기념 엽서며 무거운 도록까지 사들고 끙끙거리며 아쉬움 자락 묻어두고  돌아오는 길은 되새김질 하느라 머리속은 슬라이드 돌아가는 듯 찰칵찰칵 소리가 나는 듯 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의자 깊숙히 몸을 묻고 바라본 차창밖은 어느새 어스름의 빛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곧 컬러에서 흑백으로 스테레오에서 모노로.... 단순하게

아나로그적인 밤으로 그러나 불빛. 네온사진으로 다시 컬러로 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