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사진관이 있는 동네

노뜰, 아주 특별한 그곳

shiwoo jang 2006. 12. 17. 14:20

연말, 한해를 떠나보내기 아쉬운 사람들이

다소 소원했거나 가까운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잊을 건 잊고 흘릴  건 흘려버리고

풀건 풀어야한다며 마련한 자리들이 잦아지고 더러 겹치기도하는,

해서 꼬인 스케줄을 놓고 갈등하거나 고민하게 되는 시기,

한주일 내내 저녁시간을 가득 채운 스케줄러를 보며 여긴 가야하고 여긴 아쉽지만 뒤로 미뤄겠다는

결정을 하며 내 삶의 우선 순위는 어디일까 생각해보는 시기에

미리 잡힌 선약을 미루고 선뜻 가야겠다고 결정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

노뜰의 공연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소박하고 따스한 삶과 녹녹지 않은 예술, 그리고 끼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그래서 나를 잡아 끄는 것은 아닐까...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동행하고 싶은 사람은 많았지만 스케줄이 여의치 않아서 함께 하지 못한 사람, 혹은

마음만 보낸 사람들의 아쉬움을 주머니에 넣고 멋진 그녀 B와 함께 동행했습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도착해서 장작불 타오르는 통 앞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공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연극 '귀환'은 여러번 만난 작품이지만 볼때마다  분위기며 구성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좀더 입체적이

이 되었고 좀더 다채로워졌다고 할까요? 이번 버전은 라이브밴드 연주가 추가되어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고 할까요?


 공연 중 사진을 찍을 순 없었으므로 팜플릿과 리플릿의 사진으로 공연 분위기를 전합니다. 노뜰의 작품은  절제된 대사, 그 대사의 틈을 채우는 조명과 음악과 배우들의 몸짓으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살아납니다. 한편의 시가 한편의 연극 작품이 된다. 이 작품 귀환이 그렇지요. 브레히트의 죽은 병사의 전설이라는 한편의 시가 귀환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낯선 시가 풀어낸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역사속에서 낯설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 채실겁니다.

 처음 무겁고 낮고 어두웠던 작품이 시간이 흐를수록 유머러스해지고 광란의  분위기를 자아내다가 한편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밀실과 광장의 공포와 아픔은

그리 낯설거나 먼 이야기가 아니어서 일겁니다.


 연극이 끝나고 사람들은 따뜻한 난로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이곳에선 아주 소박하고

따스한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배우들이 직접 요리한 맛난 음식과 술이 그리고 노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노뜰이 전부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매운 매운탕을  너무 맵다고 호호 불면서도 맛있다를 연발하던 아릿다운 영국처자와 이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신 목사님과 배우들과 노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맛깔스러운 자리였습니다. 배우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하고 ...왜 그런거 있지요? 왜 연극하세요? 언제 부터 ...등등...


주연 여배우 이지현씨와 브라스밴드로 합류한 뮤지션들입니다. 뭐 뮤지션들의 연기가 날로 좋아져서 '이참에 연극하지? ' 라는 말을 들었다고도 하고요...


배우들과 관객들이 이렇게  어우러진 이런 자리 흔치 않을걸요? 그 보다 이 뒤배경이 맘에 들지 않으세요? 꾸미지 않고 바꾸지 않고 그 옛날 교실 그대로를 살린 실내 말이지요.


이 분이 연출이자 극단 대표인 원영오대표입니다. 누군가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분을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지요.  인간에 매료되긴 쉽지 않은데요. 이분에게 매료되는 건 쉬운 일 같습니다. 제가 소개한 분들이 대부분 느끼는 점이더군요.


귀환의 주인공 병사역의 김대건씨입니다. 진솔하고 마음 따스한 분이지요. 오랜만에 많은 이야길 나눌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차가 떠날 때까지 손흔들어 준,  핸드폰의 불빛으로도 ...그 따스함에 밤길이

환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귀기울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연극무대에 올랐던 선배를 찾은 참한 그녀의 이야기, 여행중 겪은 아찔한 순간 이야기 . 연극이야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아쉬움을 밟고 노뜰을 나서야했습니다.  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밤이라도

샐 수 있었을텐데... 책임감이라는 괴물에게 덜미를 꽉 잡히고서야 그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그 밤길은 꿈에서 현실로 되돌린 시계바늘이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노뜰은 제게 되돌리고 싶은 시간 같은 것이 아닐까합니다. 제가 노뜰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사람의 향기가 나는 노뜰이 그래서 좋습니다.
곧 제주 공연을 떠나는 노뜰,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예술의 향기, 사람의 향기를

전하고 돌아오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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