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바깥에 있다
황지우
논에 물 넣은 모내기철이
눈에 봄을 가득 채운다
흙바닥에 깔린 크다란 물거울 끝에
늙은 농부님, 발 담그고 서 있는데
붉은 저녁빛이 사선으로 들어가는 마을
묽은 논물에 입체로 내려와 있다
아, 아직은 저기에 바깥이 있다
저, 바깥에 봄이 자운영 꽃에 지체하고 있을 때
몸이 아직 여기 있어
아름다운 요놈의 한 세상을 알아본다
보릿대 냉갈 옮기는 담양 들녘을
노릿노릿한 늦은 봄날, 차 몰고 획 지나간 거지만
왜 아직은 바깥이 있다고 했을까? 차 몰고 휙 지나가느라 안에 들어서지 못해서? 아니면 아직 봄이 안으로 덜 채워져서? 봄이 자운영꽃에 지체하고 있어서? 중심이 아닌, 안이 아닌 바깥이 주는 말의 울림은 중심, 주류로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바깥 외방 외인이 주는 말이 부담스럽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황지우의 시를 대하면 솔직히 기죽는다. 어쩌면 맛깔스러운 말을 골라와 생뚱맞게 쓰는데 그것이 어긋나지 않고 삐죽거리지 않고 참하게 잘 들어맞는데 놀라게 된다.
‘논에 물을 넣은 모내기철에 눈에 가득 봄을 채운다, 흙바닥에 깔린 물거울, 사선으로 들어가는 마을 논물에 입체로 내려앉은 붉은 저녁빛, 봄은 자운영꽃에 지체하고, 보릿대 냉갈 옮기는 담양들녘을 노릿노릿한 늦은 봄날 차 몰고 휙 지나가고.... ’ 제각각 말들을 집합시켜 어쩌면 이렇게 맛깔스러운 상을 차려내는지 얄밉기까지 하다. 황지우는 고도의 시적 상상력과 탁월한 언어 감각을 가진 시인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시 한 행이 주는 이미지에다 다른 행이 더해지면서 이미지가 최대치로 확장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툭 던지고 받아 감치고 시를 끌고나가는 힘이 이런 거 아녀?
늙은 농부가 아닌 늙은 농부님은 또 뭔가? 늙은 농부님이기 때문에 시행의 맛이 달라지는 놀라운 경험. 황지우의 시를 읽다보면 시를 쓰는 것은 유일적정의 언어를 찾아가는 일이라는 유종호의 말이 수긍이 간다. 그래서 가끔은 시인의 언어감각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하는데 언어감각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자질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죽을 일은 더 보태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 시는 시각 감각이 뛰어난 시이다 시를 읽으면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이미지는 수채화 그리는 화가 곁에 앉아 그가 그려내는 그림을 앞에 두고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을 보는 사람 또한 그 그림의 일부가 되고 싶을 정도로 미학적으로도 뛰어나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사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시는 시를 처음 대하는 문외한이 봐도 독서력이 있는 고급한 독자가 봐도 제각각의 이유로 좋은 시라는 평을 할 것 같다. 느낌으로든 아는 만큼 읽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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