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희디흰- 서윤후

shiwoo jang 2020. 3. 18. 17:21

희디흰

 

                    서윤후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떤 얼룩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하게

 

애어른 같은 아이를 키우는 집은 행복할 것 같다고 옆집

사람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공사장에 다녀온 사람은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에도 검은 발바닥은 검은 발바닥이었다 더러워도

더럽다고 할 수 없었다

 

팔레트의 굳은 물감

두 번째 신는 흰 양말

 

마른 빨래를 개키던 어머니를 돕고 하고 싶은 말을 삼

키며 조용히 책도 읽었다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는 깨끗한

손이 있었다

 

타일이 풍기는 표백제 냄새

깨끗해졌다고 믿는 중독

 

그의 발바닥을 그렸다 검은 생각들이었기 때문에 깊은

밤 속에 파묻혀 아버지가 화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우는 일만 하던 어머니의 표백된 얼굴이

 

자꾸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병에 걸렸다

흰 색을 잃어 가는 여전히 흰 옷 같은 나의 세포

 

나에게 묻은 것들이 무엇인지

보호하는 이 깨끗한 색으로부터

나는 가장 위험했다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민음사


흰 색을 잃어가는 여전히 흰 옷 같은 나의 세포와 이 깨끗한 색으로 부터 가장 위험한 나,

락스로 표백하면 모든 것이 깨끗해졌다고 착각하는 당신, 나, 그리고 우리들,


'poem > 時雨의 시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독- 황인찬  (0) 2020.03.19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황인찬  (0) 2020.03.19
양파 공동체- 손미  (0) 2020.03.17
달력의 거리- 손미  (0) 2020.03.17
뮤직 콘크리트- 서영처  (0) 202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