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디흰
서윤후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떤 얼룩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하게
애어른 같은 아이를 키우는 집은 행복할 것 같다고 옆집
사람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공사장에 다녀온 사람은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에도 검은 발바닥은 검은 발바닥이었다 더러워도
더럽다고 할 수 없었다
팔레트의 굳은 물감
두 번째 신는 흰 양말
마른 빨래를 개키던 어머니를 돕고 하고 싶은 말을 삼
키며 조용히 책도 읽었다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는 깨끗한
손이 있었다
타일이 풍기는 표백제 냄새
깨끗해졌다고 믿는 중독
그의 발바닥을 그렸다 검은 생각들이었기 때문에 깊은
밤 속에 파묻혀 아버지가 화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우는 일만 하던 어머니의 표백된 얼굴이
자꾸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병에 걸렸다
흰 색을 잃어 가는 여전히 흰 옷 같은 나의 세포
나에게 묻은 것들이 무엇인지
보호하는 이 깨끗한 색으로부터
나는 가장 위험했다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민음사
흰 색을 잃어가는 여전히 흰 옷 같은 나의 세포와 이 깨끗한 색으로 부터 가장 위험한 나,
락스로 표백하면 모든 것이 깨끗해졌다고 착각하는 당신, 나, 그리고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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