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에그 -유계영

shiwoo jang 2020. 3. 6. 08:09

에그


                    유계영


깃발보다 가볍게 펄럭이는 깃발의 그림자

깃에 기대어 죽는 바람의 명장면


새는 뜻하지 않게 키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알아서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창밖의 무례하 아침처럼

그러니까 다가올 키스처럼

어떻게 두어도 자연스럽지 않은 혀의 위치처럼

새는 뜻하지 않게 시작된 것이다


새가 머무는 날

홀쭉한 빛줄기에 매달리는 어둠을 쪼며

짧게 나누어 자는 잠


그런 잠은 싫었던 거야

삼백육심오 일 유려한 발목의 처녀처럼

하나의 목숨으론 모자라

죽음은 탄생보다 부드러운 과정


새는 알을 남기고 간 것이다

나는 알을 처음 본 게 아니지만

곧 태어날 새는 어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

알 속의 혀가 입술의 위치를 짚어 보는

그런 명장면



                                                     - 에그, 유계영, 온갖 것들의 낮, 민음사



죽음은 탄생 보다 부드러운 과정 이라는  시구에 생각이 머문다.

흐름이 유연하고  생각을 잡아 두는 힘이 있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