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 꽃을 보다
유종인
환멸을 가장할 필요는 없다
생은 또 다른 곳을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었지만
허공을 헤엄쳐오는 물고기는 아니었다 고요히
한낮이 흐르듯 타들어가는 오후에
나 홀로 집에 있다는 것이 작은 운명처럼 보였다
현관을 나서면 작은 마당이
온갖 잡초들과 나무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보여
준다
맨 마음으로 보면 언제나처럼 오줌이 마렵다
사철나무 울타리로 걸어가 아랫도리를 까면
푸른 혀를 가진 사철나무 잎사귀가 문득 푸른 눈구멍
으로 보인다
그 눈빛은 내 등 뒤에 피어난 몇 포기 부추 흰 꽃에 맞
춰진다
언제 따로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매년 이맘때 쯤이면
가는 줄기에서 흰 꽃이 피어나고 그 꽃대 근처엔
환멸을 모르는 벌과 나비가 드물게 앉곤 한다
그 자리에 나는 가끔 발길이 멈춰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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