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매화꽃 목둘레- 안도현

shiwoo jang 2016. 2. 29. 20:39

매화꽃 꽃둘레


                                 안도현


 수백 년 전 나는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마을에 나타난 나

어린 계집 하나를 지극히 사랑했네 나는 계집을 분 盆에

다 심어 방 안에 들였네


 하루는 눈발을 보여주려고 문을 열었더니 계집은 제 발로

마루 끝으로 걸어나갔네 눈발은 혀로 계집의 목을 빨고 핥

았네 계집의 목둘레는 얼룩이 져서 옥골빙혼玉骨氷魂이

라 쓰고 빙기옥골 氷肌玉骨이라 쓴 옛 시인들을 희롱하였

네 그러다 계집은 그만 고불에 걸리고 말았네


 그날 나는 계집의 목둘레를 닦으려고 붓을 들었으나 붓끝

만 살에 닿아도 싸락눈처럼 울었네 또 나는 붓을 들어 한 편

으 시를 쓰려 하였으나 식솔들이 나를 매화치 梅花痴라 비

웃으며 수군대는 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네


 나는 늙었네 늙어 초췌해진 면상을 차마 계집에게 보일 수

없었네 생의 목둘레선은 끔찍이 외로워질 때 또렷해지는 법

이어서 나는 아래채로 계집의 거처를 따로 옯겼네 나의 혹

애酷愛는 서성거리는 발로시로 건너갈 것이었네


 그해 섣달 초이랫날, 나는 매화 분盆에 물을 주라 겨우

이르고 나서 아득하여 눈을감았네 그리하여 매화꽃은, 매

화꽃은 목둘레만 남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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