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길에서 만난 사람들

엄마냄새가 그리운 날, '엄마냄새'의 작가 양선희를 만나다

shiwoo jang 2010. 3. 17. 13:04

 

 

 

 

엄마냄새가 그리운 날, '엄마냄새'의 작가 양선희를 만나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께 심하게 혼나고 왔거나 짝꿍이란 말다툼이라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엔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렀던 "엄마! "에는 서러움이 뚝뚝 묻어났었다.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눈물 뚝뚝 흘리면서 학교에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면, 일단은 무조건 내편이 되어 주시던 엄마의 "누가 그랬어? 내 새끼한테……." 그 한마디면 그 서럽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서러운 울음이 잦아들고 나면 조근조근 타이르던 엄마에게선 참 좋은 냄새가 났다. 그런 날은 엄마에게 마냥 기대어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엄마냄새가 좋아서…….

 

'엄마냄새' 라는 제목으로 책 한권이 나왔다. 책 표지가 누군가에게 받은 예쁜 선물 같다. 책을 선물 받으면 그냥 표지만으로도 기쁠 것 같은데, 책이 만들어진 이야기는 더 감동적이다. 1년 6개월간 엄마에게 드렸던 편지와 사진을 묶어서  에세이집, '엄마냄새'는 시인 양선희가 외로움을 타는 홀로계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딸의 사랑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엄마의 딸인 시인은 엄마에게 때때로 어린 소녀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산책길에서 본 풍경들을 이야기하고  어린 시절 이야기, 아이들이야기, 사람들이야기를 종달새처럼 지저귄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속삭임 같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속삭일 줄 아는 딸 양선희를 만났다. 시인은 원주에 산다. 결혼과 함께 원주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길렀다. 전화 통화에서 그녀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친구가 불렀다는 피아프(piaf, 종달새)라는 애칭이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릴까? 그녀의 목소리는 지저귄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점점 궁금해졌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선 시인, 생글생글 눈웃음이 예뻤다. 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참 사랑스런 딸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이 참 궁금해졌다. 슬쩍 책을 들쳐보니  사진이 다정하게 말을 건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란 그런 풍경이었구나 싶었다. 작고 앙증맞은 꽃들, 고양이, 강아지, 올챙이, 물방울, 하늘과 바다…….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중한 것들, 시인은 엄마에게 보여줄 풍경을 위하여 사진을 배웠다고 했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 그 풍경과 만나면서 시인은 참 행복했겠다.

 

시인 양선희는 경남 함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7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하고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가 당선 되면서 시집'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다'를 펴내고 이명세 감독과 영화' 첫사랑'의 각본을 공동 집필하는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두 번째 시집 '그 인연에 울다' 이후 한동안 뜸했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에세이 '엄마냄새'로 독자들을 다시 찾아왔다.

 

그 '엄마냄새'를 시작으로 우리는 곧 그녀의 세 번째 시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녀의 시나리오를 영화에서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장르를 가볍게 넘나드는 그녀와의 이야기는 문학에서 영화로 또 사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시나리오 이야기를 하다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까지 나왔다. 시인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카모메식당'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을 보지 못했다고 하자 그녀는 그 영화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이야기가 맛있었는지 당장 비디오 가게로가 그 영화를 빌려보고 싶었다. 그녀가 들려주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그녀 안에서 벌써 잉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작업 중인 그녀의 시나리오' 거울속의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조만간 앤딩 크래딧에서 그녀의 이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혼자 설레었다.

 

 

시인이 엄마에게 보낼  사진을 찍으면서 만났던 이야기,  영화이야기. 책이야기, 커피 이야기를 하나보니 시간이 네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시인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녀의 해피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저녁 내내 즐거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그녀의 '엄마냄새' 펼쳤다. 15개의 풍경 속으로 그녀가 손잡고 이끄는 데로  그녀의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올챙이도 만나고 고마리꽃, 연꽃, 가을 풍경, 을 만났고 그녀의 고향동네에서 어린 소녀인 시인을 만났고 그녀가 사는 우산동 근처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그녀를 만나면서 나는 밤새 돌아다녔다.

 

'엄마냄새'는 엄마가 되고 난 뒤, 그리고 한참 뒤의 중년의 엄마가 더 나이든 엄마에게 들려주는 꽃과 생명과 흙, 추억이 있는 세상 이야기이다. 이제는 친구가 된 모녀의 산책길이 궁금하시다면, 엄마의 딸로 태어나 행복하다는 시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장을 펼쳐보면 좋겠다. 사춘기 무엇을 말해도 퉁퉁거리는 딸의 책상에 슬쩍 올려두어도 좋겠고 쓸쓸함이 병이 되어버린 엄마를 보는 일이 막막한 딸들이 흉내 내도 좋을 것 같다.

 

딸의 편지를  받는 엄마는 얼마나 즐거웠을까? 또 딸의 편지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는 시인의 엄마가 된 것처럼 행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딸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아니다 엄마에게 당장 편지를 써야겠다. 아니 전화라도…….

 

....제 친구 김정선과 통화하실 기회가 있었지요? 그때 엄마는 그 친구 엄마의 안부를 물으셨지요?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신 줄은 모르고요. 친구의 대답을 들은 엄마가 그러셨지요.

"부를 이름이 없어 허전하겠구나!"

엄마가 하는 말씀 한 마디, 하시는 행동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너무나 맑은 거울이에요 그런데 저는 엄마의 100분의 1도 못 따라가니 참 한심할 딸이지요?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여기며....

                                                                                         - 엄마생각, p308

 

내가 만난 시인 양선희는 따뜻하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사랑을 나눌 줄도 알고 환하게 웃을 줄 알기에, 그리고 아직 부를 이름이 있어서…….

그녀의 책 엄마 냄새는 딸이 엄마에게 주는 선물 이었다. 엄마가 딸에게 선물이 듯이……. 그 선물이 궁금하다면 핑계 삼아 딸아이와 나란히,혹은 엄마와 나란히 서점 나들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