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내는
이 마음의 비린내는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그 것이나 핥아보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꽃으라면
식구들 다 잠이 든 한밤중 홀로 오롯할 수 있는 시간
저물녘 세상 모든 풍경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
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저물녘에서 조금 더 지난
달 차오르는 시간쯤,
길고양이든 집고양이든 착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쯤...
나는 가을 이후 송찬호 시인의 시가 부쩍 좋아졌다.
참 야금야금 맛있게도 잘 읽힌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랑하고 맛난 시를 지을 수 있을까...
고양이의 그루밍이 눈앞에 보이는 듯,
달을 내어주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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