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good/책에 밑줄 긋기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shiwoo jang 2008. 7. 7. 22:45

 

 

조금 불편한, 그러나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고

 

 

내게 책은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읽으면 재미있고 흥미로워서 저절로 읽히고 그래서 손을 놓기가 힘이 드는 책과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힘들어서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뇌리에 오래 남는 책은 그 불편한 책이다. 그 재미없고 불편한 책에는 쉽게 책을 덮을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어 책을 덮지 못하게 한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타인의 고통은 꽤 오랜 동안 내 손에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읽기가 아니 읽어내기가 힘이 들었다. 이 책에는 잔인하고 끔찍하게 고통을 당하는 타인의 이미지가 삽화로 혹은 사진으로 가득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불편해하고 분개하면서도 그 이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왜 그럴까? 나는 무관한 타인의 고통이어서 일까? 타인의 고통, 특히 그 이미지가 그저 잔혹하고 충격적인 볼거리에 불과한 걸까? 나는, 내가 있는 이곳은 안전하고 고통과는 거리가 멀어서 다행이다. 그것은, 그 일은 먼 나라의 타인의 이야기 일뿐이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덮어버리면 그 뿐일까? 정말 그럴까? 이런 저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타인의 고통’은 말 그대로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글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에 관한 글만은 아니다. 전쟁터에서 처절하게 고문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뉴스로 보다가 ‘아, 너무 잔인해 그렇지만 여긴, 나는 아닌걸’ 하고 채널을 돌려버리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잔혹한 이미지 속의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 속의 타인과 우리가 같은 지구에 살고 있고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 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결코 그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그리하여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 두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수전 손택은 그녀 특유의 까칠한 문체로 말한다.

좋은 글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독자의 가슴을, 머리를 흔들어 무기력과 무심함에서 끌어낸다. 게으른 몸을 일으켜 세워 등을 떠민다. 뜨끔하고 싸하게 독자의 내면을 흔들어 조금씩 움직이고 변화하게 한다. 수전 손택은 나를 일으켜 흔들었고 움직이게 했다. 연민하고 동정만 하지 말라고 일갈한 그녀는 내게 행동을 원했다. 나는 제 3세계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굶주림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아기에게 콩우유를 보내고 학교 가고 싶은 아이에게 학교 갈 수 있는 길을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농부를, 여성을 도울 수 있는 길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당장 몸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라고 했다. 그녀는 나를 변화 시켰다. 고통을,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고 네가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서서히 변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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